[집을 순례하다]를 읽고 '집'에 대한 생각을 더 이어나가기 위해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아니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전편격인 [집을 순례하다]를 먼저 읽었다. 전편과 이 책의 옮긴이가 다른 것이 좀 서운하기는 하지만 일단 생각을 접고, 전편의 좋은 여운을 되새기며 집순례에 다시 따라나섰다.

  안도 다다오의 그 유명한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시작으로 하는 이번 순례는 오직 그 건축가이기에 가능했던 작품들만을 찾아나서는 탁월한 건축혼을 지닌 건축가들의 도전정신과 새로운 추구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다.

  안도 다다오이기에 가능했던 '스미요시 연립주택', 건축가 임스부부의 집, 찰스무어와 그의 동료들이 시도한 바닷가의 상자들-시랜치, 피에르샤로의 빛의 궁전-메종드 베르, 루이스 바라간의 정사각형의 공간들이 멕시코의 푸른 하늘아래 독특한 색감을 뽐내는 집, 안젤로 만자로티와 브루노 모라스티의 까사 그랑데와 쌍둥이산장, 건축과 삶이 한몸인 듯 잘 결합한 키에르홀름의 집 등이 소개된다.

  집을 방문하기 이전에 도면을 보고 상상순례를 여러번 마친 후 방문순례에 나서는 저자는 도면으로 볼 수 없었던 오직 방문자에게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언급하기를 즐기며, 사진촬영이 불허된 건축에 대해서는 모형제작으로 보여주고, 기억에 남는 작은 디테일들에 대해서는 직접 손으로 그려서 보여준다.

  저자가 항상 감동하는 바는 건축가들이 누구보다도 건축의 이상과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음에도 항상 현실에 뿌리를 두었다는 점이다. 즉 건축이 삶과 꼭 붙어있는 것이다. 엉뚱하게 보이는 시도 속에도 항상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발견할 때 저자는 가장 감동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삶 전체가 건축의 실현 그 자체였던 필립존슨에게 바쳐졌다. 필립존슨이 자신의 주말주택으로 코네티컷의 뉴캐넌에 지은 '글라스 하우스'를 시작으로, 자신의 넓은 땅에 마치 이상향을 건설하듯 하나씩 건축물을 보태나가는 과정을 추적해나간다. 건축물의 건축연도와 건축도면을 바탕으로 하고, 전후 건축물과의 시선의 이어짐을 생각하면서 필립존슨의 생각을 최대한 읽어내려 노력하는 재미있는 과정이다.

  다시 한번 '집'에 대해서, '집을 짓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집을 짓는 사람들'에 대해서 행복하고 재미난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