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느낀점]

<사랑을 묻다>를 읽고 있으면 사랑에 목마른 절박한 두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면 영라와 부용이 겸에게 원하는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랑의 또 다른 모습과 형태로 그들앞에 나타난 치명적인 사랑이었던지..... 사랑에 관련된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과연 사랑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작가 후기를 읽고 작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다소 놀랐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사랑에 관련된 소설을 읽을 때마다 때론 사랑이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사랑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사랑이 치명적이기도, 비열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을 묻다>를 읽고 이 책에서 느낀 사랑은 기존에 느낀 사랑과 사뭇 달랐다. 한편 부용의 남편 바보 겸을 빼앗으려는 영라의 사랑과 바보 남편 겸의 아내 자리를 지키려는 부용의 사랑은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사랑이었다. 그들의 사랑에는 외로움이 깃들여 있었다. 세 살짜리의 뇌를 가진 겸이가 뭐가 그리 좋다고 그 예쁜 여자 영라가 목숨을 걸고 겸이를 빼앗으려 했겠는가! 가난 때문에 돈 3천만 원에 한국으로 시집 왔지만 겸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하백당에서 인정받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해나가는 부용이었다. 결국 영라도, 부영도 사랑이 그리웠던 것이다. 아니 자신만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끝자락에 보면 시어머니와 부용의 대화가 나온다. 처음 부용을 봤을 때 겸이를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스타 '비'를 사모하고 있었다. 그를 보면 괜스레 즐겁고 웃음이나고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삶에 지쳐 스타를 좋아할 마음조차 없어져 버렸다. 그녀 가슴에 사랑이 식어지자 눈의 빛이 사라졌던 것이다. 스타라도 좋고, 겸이라도 좋으니 누구든 사랑하라는 시어머니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누군가를 가슴에 품으면 마음이 따뜻하고 눈빛이 별처럼 반짝인다. 소설 속에서 결국 겸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쓸쓸히 죽은 영라도, 영라가 죽은 후에야 남편의 사랑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은 부용도 외로움에 지쳐 사랑이 그리웠던 것이다.  

작가는 사랑보다는 우리나라의 한 문제점인 국제결혼에 대해 논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이 소설을 통해 사랑의 또 다른 형태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영라는 세 번의 이혼과 무섭고 독한 여자로 나오지만 훗날 겸의 순수한 마음을 깨닫고 그의 마음에 들어가 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사랑이 위험하고 치명적이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녀는 멈출 수가 없었다. 절박하면서도 애절한 사랑처럼 절대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 비춰진 영라는 가여운 여자에 불과했다. 조선시대라는 큰 식당 주인임에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여자임에도 오로지 바보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자신이 가진 게 더 많은 데 왜 그토록 가지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고 아파할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만약 소설 속 인물이 아니었다면 '이제 괜찮아요'라며 안아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백당 식구들은 그녀를 독한 년, 무서운 년, 나쁜 년, 천하에 모진 년이라고 욕했지만 그 속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반면 부용은 국제결혼을 떠나서 같은 여자로써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비록 남편이 불구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평생의 짐을 떠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그녀는 당차고 현명한 여자였다. 겸의 동생 면이 그녀의 발랄함에 경계를 할 정도였으니 그녀는 참 똑똑한 여자다. 영라의 함정과 유혹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은 강직함도 가진 여자다. 하백당의 마님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를 지극 정성 보살피는 며느리 역할도 묵묵히 해나가는 어진 여자였다. 그녀가 지금 누린 행복은 어쩌면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당연한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 또한 결혼 이주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부용은 다른 이주민 여성에 비해 행복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부용과 영라가 원하는 사랑에 근원지가 겸이라면 겸은 분명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바보다. 자신의 의지도, 생각도 분명치 않은 바보다. 그가 사랑에 대해 아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엄마로부터 지독하게 받은 교육으로 자신의 아내가 고전소설 속 우렁각시인줄 알고 사는 바보다. 그의 입에서 늘 버릇처럼 우리 부용이, 우리 부용이라고 외치지만 부용이를 진정 사랑해서 늘 찾는지도 알 수 없다. 부용과의 첫 날밤도 아내가 장난스레 만지지 말라는 말에 겸은 결혼 후 반 년 이상을 부용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반면 영라는 어릴 적부터 함께 놀았던 소꿉친구로 남녀간의 성관계가 그저 놀이로 생각했던 겸이었다. 습관적으로 아침이면 영라를 찾아가 성놀이를 즐겼다. 그에게는 죄책감도, 미안함도,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 사실을 가족들이 알고 동생 면이 형을 앉혀 놓고 두 시간 가량 설득하고 나서야 영라에게 가는 길을 막았다. 그것이 나쁜 짓이라는 사실을 알턱이 없었지만 우렁 각시 부용을 다시 중국으로 보내버린 다는 말에 무서워 영라에게 발길을 끊었다. 고전소설 속 우렁각시는 평생 서방과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겸은 당연히 우렁각시가 자기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보를 향해 외치는 두 여자의 사랑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마치 그 사랑은 겸이 깍은 목각인형마냥 아무 감정도 없는 그 행위만이 남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바보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진 고생을 다하며 참아온 부용은 영라의 죽음을 통해 겸이 괴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영라가 자신 때문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영라가 죽기 전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자신의 몸을 보듬고 더듬고 탐욕하는 그가 괴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토록 또 다시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 영라가 죽기 전 서로 뒤엉키고 함께 술을 먹고 즐겼음에도 어쩌면 저리 다 잊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성을 요구할 수 있는지 그저 남편이 괴물로 보였다. 하백당 식구들이 다 괴물로 보였다. 영라를 죽게 만들었으면서도 제 각기 아무말 없이 내일을 살아가는 거보면 틀림없이 괴물이라 생각했다. 그토록 영라가 미웠건만 지금은 영라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부용은 그래도 자신이 감싸고 아끼고 평생 함께해야 할 사람이 남편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미 작은 종이(혼인 신고)에 갇혀 남겸의 처 최부용의 삶은 결정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다시 떠나야 할 것 같다는 결혼 이주민 여성을 그녀는 철새로 표현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전라도 광주를 중심으로 전라도에는 국제결혼이 전국에서 1위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의 배경 또한 전라도 광주다. 아마도 저자가 태어난 고향이 고흥이기에 더욱 실감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의 문제로까지 번진 국제결혼. 부용을 비롯한 많은 이주민 여성들이 멀리서 한국을 바라보았을 때는 한국은 샹그리라였다. 마음 속에 존재하는 해와 달. 다툼도 없고 근심도 없는 무릉도원 같은 곳. 하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그녀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그래서 부용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텃새가 아닌 언제든 떠나야 하한번 생각하게 보게 된 국제결혼. 많은 이주민 여성들이 고통 없이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