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재미로 보았던 <왕자와 거지>를 성인의 시각으로 다시 보니 새로운 맛이 났다. 재미도 재미이거니와 뭉클한 감동과 함께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원수들의 필독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에드워드 6세가 톰 캔티가 되지 않았다면, 서민들의 눈물, 아픔, 고통, 비참함을 알지 못한 채 나라를 통치했을 것이다. 반면 거지였던 톰 캔티는 처음 양심에 찔려 왕자의 삶을 거부했지만, 그 역시도 서서히 호화스러운 궁전 생활에 젖어, 행렬에서 마주친 부랑자 어머니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만약 그에게 선한 양심이 없었다면 진짜 왕자의 진실을 외면했을 것이다.

나는 톰 캔디의 아슬아슬한 궁전 생활보다도, 에드워드 왕자의 부랑자 생활에 감동을 받았다. 실제로 헨리 8세가 다스리던 그 당시의 모든 법은 왕 중심에다, 죄에 비해 벌이 잔혹하기 그지없던 시대였다. 화려한 행사와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날 정도로 어려운 상태였으므로 당연히 백성들의 생활은 말할 것이 없었다. 본래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사람은 악해지기 마련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도둑떼와 거리의 부랑자들이 득실 되던 때니 분명 선을 추구하기 에는 어려운 시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왕과 귀족들은 호화로운 생활에 젖어 백성들의 생활은 살피지 않고 범죄를 막기 위해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국민이 존재해야 나라도 있는 법,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잔혹한 법만 없어졌다 할뿐 진정한 정의는 없는 것 같다.

우연히 서로 옷을 바꿔 입으면서 왕자는 거지로 거지는 왕자의 삶을 살게 되지만, 분명 사람에게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무작정 동경만 해온 왕자의 삶도 하나부터 열까지 허례허식에다, 사생활은 없을뿐더러, 왕자의 체통을 지켜야 하는 엄숙한 의식 천지였다. 마음껏 진흙탕 속에 뒹굴고 옷을 입은 채로 운하와 강에서 헤엄도 치고, 물장구도 치고, 자유롭게 놀던 톰 캔티에게는 궁전 생활이 정말 숨 막히는 하루하루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권위와 권력은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일 뿐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하물며 왕자도 옷을 벗고 톰의 너덜거리는 옷을 입자 부랑자가 되어버렸다. 다시 금빛 나는 옷을 되찾았지만, 자리(위치)란 어느 한 사람의 것도 아니요, 영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도 자신의 권력으로 사람을 이용하고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천년만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자비와 선을 베풀어 그 자리를 떠나도 오래도록 향기 나는 사람이 오히려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