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가 김치 수제비를 끓이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밀가루 반죽이 적어서 화자의 그릇에는 떡점 보다는 김치 줄거리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 하나의 삽화에 불과하지만 당시대를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애환이 그려진 소설이다. 그러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그 남자네 집”이다.

6.25가 시대적 배경이지만 탱크도, 인민군도, 한국군도 나오지 않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의 목소리도 없고, 오로지 전쟁의 뒤편에서 숨죽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남루하고 가난한 시대였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가슴 설레는 일도 겪고, 연애도 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이지만, 그래도 명동은 패션의 중심지였고, 그 곳의 다방에서 젊은 남녀가 마주앉아 사랑을 속삭였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의 폭력에 휘말려야 했던 힘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미덕이다. 물론 시대의 아픔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무너진 사람도 많고, 그들의 아픔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그러한 큰 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없이 반가웠다.

“그 남자네 집”은 투박하고 빛 바랜 흑백 필름의 영상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창조해낸 말끔하고 생생한, 미남미녀가 뛰어다니는 50년대의 재현이 아니다. “그때를 아십니까”, “광복 60년”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소박한 한국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다. 쑥스러워 하며 구호품 배급을 타고, DDT를 뿌려달라고 아우성을 쳐대는 사람들. 가난하고 남루해 보이지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모습들, 그러한 것들이 박완서의 글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 춘희의 아련한 첫사랑은 그의 것 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첫사랑이고 아련함일 것이다. 전쟁으로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져도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랑하고, 또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돌아가신 할머니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