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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나쓰메 소세키

소스케와 오요네는 금슬이 좋은 부부임에 틀림없었다. 같이 산지 육 년이나 되는 오늘까지 단 하루도 서먹서먹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말다툼으로 얼굴을 붉힌 기억은 더더욱 없었다. 두 사람은 포목집에 가서 옷감을 사서 만들어 입었다. 쌀집에 가서 쌀을 사와 밥을 지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일반 사회와의 관계가 극히 적은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일상에 필요한 생활 필수품을 공급한다는 의미 이상으로는 사회의 존재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뿐이었고 그것만으로 그들은 충분했다. 그들은 산속에 있는 마음으로 도시에서 살았다.

-P.171-

'나쓰메 소세키'. 지폐인 천엔짜리에 얼굴이 실려있을 정도로 일본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의 이름입니다. 혹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서 '나쓰메 소세키'로 운을 띄우는 사람은 그것이 외국인일지라도 상당히 우대해준다라고 하더군요. 이런 점에 있어서도 일본인들의 '나쓰메 소세키'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알수 있습니다. 타국인 한국에서도 작가는 꽤나 유명합니다. 책좀 읽었다 하는 사람들 중에 그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을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 정도니까요. 그렇게나 유명한 작가이지만 정작 전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체도 수려하고, 아름답지만 너무 밋밋한 이야기를 다루는것이 '가쓰바타 야스나리'의<설국>과 비슷한 느낌이였습니다. 과거 읽었던 <그후>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이야기는, 진지한 문학도가 아닌 저에게는 너무 어려웠나 봅니다. 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문>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묘사만이 존재하고, 내용이 없는 한편의 풍경화와 같았습니다.

소스케는 극히 짧았던 이때의 대화를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그 하나하나가 거의 무색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담백했던 것을 시인했다. 그리고 그처럼 투명했던 목소리가 두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그렇게 새빨갛게 칠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하게 여겼다. 지금은 빨간색이 세원을 지나 옛날의 선명함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서로를 불태운 불길은 자연히 변색이 되어 검어졌다. 두 사람의 생활은 이렇게 해서 어둠 속으로 침잠해갔다.

-P.188-

주인공 소스케는 아내 오요네와 조용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스케의 어린 남동생 고로쿠가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죠.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소스케는 동생을 작은아버지 댁에 맡기게 되는데요,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에는 작은집에서도 고로쿠를 더이상 지원해 주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부부는 정말이지 평화로웠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자신들의 삶에 만족해왔으니까요. 하지만 동생이 들어온 후로 부부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입니다. 일상생활의 아주 작은 변화가 불러온 생활의 변화로 인해 소스케는 그간 덮어두었던 과거사와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시작은 잔잔한 홈드라마이나 후반부에서는 종교와 구원을 찾는 격랑을 맞이합니다.

나는 물을 열어달라고 왔다. 그렇지만 문지기는 문 안쪽에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였다.

...

그는 앞을 바라다보았다. 앞에는 육중한 문짝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문을 통과할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끝날 사람도 아니어다. 결국 그는 그 문 아래에 꼼짝달싹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P.265-

책은 전형적인 고전의 형태를 띄고 있었습니다. 내용보다는 그 독특한 기법이라던지, 짜임새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였거든요. 감정에 대한 세밀하고 독특한 묘사와, 치밀한 복선은 다시한번 책을 뒤적이게 만들며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기대하게 만드는 사건들에 비해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나 담담했습니다.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위에 인용한 부분으로. 자기 내면의 모습을 '문'에 비유한 부분이였는데요. 아무리 문지기를 불러대도 자신의 힘으로 문고리를 돌리지 않는 이상, 문은 굳게 닫혀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것이, 바로 전에 읽었던 <모두, 안녕히>의 사토루의 사고와 닮아 있어 뭔가 새로웠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문을 열어야 다른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자아가 탄생할 수 있다”는 소설 속 깨달음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적지 않은 의미를 주는데요. 일상적인 문에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문으로 소재를 확장시킨 부분이 오늘날 우리에게 '고전'이라 불리며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