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는 것은 인간의 오랜 염원이다. 진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한 후 모든 것을 손에 넣었지만 영생만은 얻지 못했다. 선남선녀를 보내 불로초를 구해오게 시켰지만 이것은 허망한 소원으로 끝나버렸다. 그러나 이 헛된 꿈으로만 보이던 인간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옛날 사람들이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게 한 과학의 힘은 이제 생명을 관장하는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 하고 있다. 복제 기술로 새로운 장기를 이식하고, 염색체의 텔로미어 연구를 통해 노화를 막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성공한다면 진시황제조차 이루지 못했던 소망을 평범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손에 넣었을 때 과연 인간은 행복할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없이 끝없이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끔 죽음은 생각하지만 영원히 사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트리갭의 샘물'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은 숲에서 샘울을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터크 가족의 이야기다. 이 가족은 자신들의 원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족의 반응이 다 다르다.

가장인 터크씨는 죽지 못하는 인생을 저주받은 인생이라 여긴다. 삶이란 끝이 있기에 살 가치가 있는 것인데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변함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에 힘들어한다. 그에게 매일매일은 살아있어서 지옥이다. 부인은 매는 영원히 사는 것을 반기지도 않지만 기왕 주어진 삶이니 순응하며 살려고 한다. 큰 아들인 마일스는 이 세상에 자리를 차지할 바에야 무언가 쓸모 있는 일을 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막내 아들인 제시는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영원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니 인생을 즐기며 살자고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터크씨의 감정이 가장 잘 이해가 되었다. 무언가를 끝없이 해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숨이 탁 막혔다. 우리가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은 인생이 짧기 때문이다. 금방 끝나버릴 것을 알기에 순간순간을 귀하게 여기며 헛되이 보내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살아야 할 날이 무한대로 늘어나버린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을까.

피자가 한 조각 밖에 없을 땐 아주 맛있게 그 피자를 먹겠지만, 방 안 한가득 피자가 쌓여있다면 먹기도 전에 질려 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그리 비관적으로 생각할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나는 이제 내가 살 날이 또 하루 줄어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늘 지나면 또 내일이 오고, 내일도 오늘처럼 살면 또 하루가 가는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매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영원히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살고 또 내일 살고 또 그 다음날 살고..

이렇게 끝없이. 짧은 인생 동안 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 놓고 모두 해 볼 수 있다는 것, 끊임없이 변해가는 날들을 내 눈으로 다 지켜본다는 것, 이 세상에 있는 책이란 책은 다 볼 수 있다는 것 등 생각해 보면 참으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는 것이기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트리갭의 샘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 샘물을 먹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바빠서 하지 못하는 일이 산더미 같고, 시간이 없어 놓치는 일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끝없이 많은 날들을 감당할 자신은 없다. 무엇이든 부족한 듯 있어야 더 귀하게 여겨진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는 내 삶이 끝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귀한 깨달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