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감성이 예민하던 시절, <그대의 차가운 손>을 통해 작가 한강을 처음 만났다. 나는 아프고, 나는 상처 받았고, 나는 영영 살아남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던 때였다. 다른 한강의 소설이 그렇듯 ‘그대의 차가운 손’에 등장하는 이들은 고통 받고 있었다. 스스로를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들은 남 같지 않았다. 한강의 소설에 빠져들었고, 잠시나마 조금 떨어져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담담한 목소리와 가락만으로도 위로의 힘을 지닌 김광석의 노래처럼, 한강의 소설도 차분한 어조와 담백한 문장으로 나를 달래주었다.

10년을 채우기 전, 다시 작가 한강을 만났다. 잘게 쪼개어 그녀가 말해주는 이야기들은 이번에도 고통의 이야기다. 몸과 마음을 다쳐, 내가 아니었던 나를 겪고 있는 사람들. 고통이 상처가 되고 흉터가 되기 전에 반복해서 덧나는 사람들. 어떤 이는 죽음을 맞고 어떤 이는 체념하지만 어떤 이는 달라진 자신 속에서 본래의 자신을 새로 태어나게 만든다. 작가는 회복을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주지만, 넌지시 하나의 길을 안내하는 것 같다. 내 눈에 비친 그 길의 통행권은 ‘용기’였다. 낯설고 어두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 아픔을 짓이겨 약하게 만들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서러움을 다독일 수 있는 용기, 미처 해오지 못했던 일을 이참에 해볼 수 있는 용기.

표제작인 ‘노랑무늬영원’은 참 예쁜 단어이지만, 사실은 도마뱀 중에서도 맹독을 가진 불도마뱀의 학명이다. 개를 피하려다 낸 교통사고로 두 손을 잃은 화가 ‘나’는 남편의 사랑까지 사그라들며 생명력을 잃어가던 중, 도마뱀으로부터 미묘한 위안을 얻는다. ‘영원’이라는 동음이의어가 주는 좋은 느낌과 더불어, 앞발이 잘리고도 되살아나는 도마뱀의 자생력이 그녀를 격려한 것이다. 도마뱀 학명에도 포함된 ‘노랑’은 표지에서도 드러나듯 이 작품을 지배하는 희망의 색으로, 한낮의 태양이 세상을 비추며 내는 빛을 떠올리게 한다. 생생한 빛에 노출되는 순간, 상처가 따뜻하게 치유되는 느낌을 준다. 주인공이 노란 빛에 따스해지는 바로 그 때,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표제작이 되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소설로 많은 이들이 다시 회복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