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나. 'TED'라는 단어를 접할 기회는 꽤 있었지만, 스쳐지나가며 새빨간 글씨에 시선을 뺏겼던 적이 있을 뿐, 테크놀로지 기업 내지 기껏해야 학술 단체 혹은 컨퍼런스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요즘 워낙 많은 컨퍼런스가 개최되기 때문에 그런 이름도 외기 힘든 것들 중 하나일 거란 생각만 하고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책을 보며 알게 된 TED 강연 중에는 모기를 풀어 놓은 빌 게이츠라든지 소아 비만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익숙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처럼 잘 알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겉핥기식 관심의 끝을 만난 듯. 부끄럽지만 '이런 걸 말해도 되나' 싶은 이야기까지 공유되는 TED 소통법을 따라 나도 용기내어 봐야지.

 

 

이제서야 비교적 잘 알게 된 TED는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약자로, '퍼뜨릴 만한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이라는 모토 아래 1980년대 부터 이어져왔다. 원래는 지식인들의 아이디어 컨퍼런스 같은 개념이었던 모양인데, 2001년부터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홈페이지(http://www.ted.com/)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더욱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영상들은 각국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번역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어 번역도 잘 되어 있는데, 18분 안에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는 강연이고 자막 설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만큼 이 책의 저자 이민영이 그랬듯 간편하게 영어공부에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TED는 강연의 공개 뿐 아니라, 최근 강연자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거나 추천을 받아 강단에 올리기도 하여 '누구나 말할 수 있다'라는 아이디어를 전달하기도 한다.

 

 

저자 이민영은 10년 넘게 주요 기업 및 기관에서 250회 이상의 강연을 해온 강사다. 강사의 눈을 통해 보는 TED 강연은 효과적인 소통의 장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공유할 만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청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방법들을 고안해야 했다. 그 방법의 성공 여부는 저자의 마음이 울릴 때 확인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강사 경험과 TED의 강연 사례를 적절히 버무려 TED식 소통법을 설명한다. 그래서 열 가지가 넘는 이 책의 장들은 모두 TED 강연의 요약이기도 하고 TED식 소통법의 안내이기도 하다. 그녀가 소통법만을 열거했다면 다른 강연자들의 책과 다를 바 없어 지루했을 수 있지만, TED의 강연 사례들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함도 덜하고 '영감을 얻기 위한 TED 강연 읽기'로만 보아도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는 것보다, 그동안의 무지 덕에 TED 강연 자체가 주는 감동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는 점이 더 의미 있다. 누구나 어떠한 것이든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라면 간단한 형태로 아주 다양하게 말할 수 있다는 TED의 개념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TEDx라 하여, 세계 각국에서 TED의 라이센스만 받아 해당 지역에서 TED의 모토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아 TED가 전세계에 퍼져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TEDx가 대학 중심으로 열리고 있고, 다른 곳에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이 청춘을 독려하는 다소 일방적인 강연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재학 당시 동국대학교에서도 각계의 21세기 리더들을 초청해 강연을 하는 수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현재 내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열정락서'도 그 대표적인 예이며, 안철수 붐을 일으킨 안철수와 박경철의 '청춘콘서트'는 대한민국 청춘 강연 유행의 시초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본래의 TED처럼 순수하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만 마음을 연다. 나에게는 강연회와 관련된 정보가 많다.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하면 처음 물어보는 말이 "강사가 누구야? 무슨 내용이야?"이다. 아는 대로 설명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잘 모르는 강사나 잘 모르는 분야의 강의에는 관심이 없다. (26쪽)

 

 

TED는 지극히 평범한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자신감을 선물한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진정한 크라우드소싱의 가치를 맛보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두려움을 벗어나 자신의 존재와 아이디어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TED 소통에 도전해야 한다. TED가 원하는 아이디어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 남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다. 단,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가 가능한 정도의 아이디어다. 너무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라면 개방해도 공유가 어렵다. (121쪽)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완벽한 교육도 없고, 완벽한 공평도 없고, 완벽한 의사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다. 그것을 인정하면 훨씬 살기 편하다. 혼자서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소통하며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다. 혼자서는 못할 일도 함께라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ED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말해도 돼." (154~155쪽)

 

 

면접관과 클라이언트, 친구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늬만 삶이 아니라 진짜 삶이다.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언제, 어떤 경험을 통하여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재미와 감동을 주는 강력한 요소인 유머로 버무려 내놓으면 된다. 삶은 리얼 버라이어티다. (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