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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끄 상뻬의 그린 삽화들을 상뻬의 작품으로 알지 못했을 때, 비슷한 톤의 삽화를 그리는 작가들을 보며 그때 보았던 것처럼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네 생각했었다. 그들이 영향 받은 작가가 장 자끄 상뻬라는 글과 인터뷰를 접하고는 기대를 안고 장 자끄 상뻬를 검색했었다. 그때의 당혹스러움과 한심함이란. 대신 황당한 기분의 한 켠에는 드디어 내가 좋아해온 그림들의 시초를 찾아냈다는 후련한 깨달음이 있었다. 상뻬 이전에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이가 있기도 하겠지만, 상뻬의 그림은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만큼 상뻬는 영향력 있고 인상적이며, 무엇보다 행복을 주는 삽화를 그린다.

르네 고시니가 이야기를 쓰고 장 자끄 상뻬가 삽화를 그린 <꼬마 니콜라>로 상뻬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고 유명한 삽화가가 되었고, 나 역시 지금은 기억도 가물거리는 <꼬마 니콜라>로 그의 그림을 접했었다. 이후 영화로 제작된 <꼬마 니콜라>를 보면서도 상뻬의 그림에서 받았던 익살맞고 포근한 느낌을 또다른 방식으로 다시 느낄 수 있어 좋아했었다. 영화도 귀여웠지만 상뻬의 그림이 생각나서 더 좋아했던 것이다. 상뻬의 그림은 어린 아이가 자주 등장하고 아이들과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대상이 아닐 경우, 그러니까 어른들만 등장할 때에는 어른도 아이처럼 명랑하고 즐거워보인다. 아이일 때 보았던 상뻬의 그림보다 어른이 되어서 보는 상뻬의 그림이 더 흐뭇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상뻬의 그림에서는 행복한 어른이 되는 일이 쉬워 보인다.

이렇게 행복을 주는 그림을 그리는 장 자끄 상뻬.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는 이 책의 인터뷰에서 밝혀지듯, 정작 그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단다. 애초에 그는 사생아였고 가난한 집안에서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싸움을 이어가는 부모님 아래에서 살아야 했다. 자신의 가난이 싫었던 어린 상뻬는 이 책에 실린 인터뷰를 볼 때, 허풍과 공상을 멈추지 않는 개구쟁이였던 것 같다. 어른을 넘어 노인이 된 상뻬로부터 번역된 말이기는 해도 여전히 밉지 않은 교만과 허풍이 남아있는데, 어린 상뻬에게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겠지만 그의 환경이 미쳤을 영향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 모습이다. 천성이 상상하기를 즐기고 상상에 빠져 있을 때면 자신과 타인을 모두 지워버리는 천부적인 현실도피의 '재능'을 갖고 있던 상뻬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 환경을 승화시켜 자신만의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탄생시켰다.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그런 상뻬의 현실도피 습성은 여전히 그를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게 한다. 그는 변함없이 따뜻한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 속의 장면들은 상상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현실에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상뻬는 인터뷰 중 현실은 진실의 겉모습에 불과하다고 말해 인터뷰어로부터 칸트와 비교되는데, 그는 자신이 보는 현실에 그가 보는 진실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의 그림은 한없이 행복해서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실은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장면들이고 그게 우리를 살게 하는 진실된 생의 에너지원일 것이다. 상뻬가 말하듯, 우리는 기적 같은 즐거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 즐거움은 곧 행복이고, 상뻬의 그림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마음에 평생 담고 싶을 만큼 예쁘게. 그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가난한 서민들은, 물론 그 사람들한테는 그럴 만한 사정들이 있겠지만,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 쪼들리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를 잘 돕는다, 서로를 존중한다, 기타 등등 그런 소리들을 하죠.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예의를 갖춰 서로를 미워하죠. 아니, 예의 따위도 갖추지 않아요. 그게 아주 힘들죠. (34쪽)

너도 나도 입에 달고 사는 그 투명성이라는 것에 찬성하지 않아요. 생각을 좀 해보세요. 모두들 진실만을 말한다면 이 세상은 완전한 지옥이 되어 버릴 겁니다. 이보세요, 친구 양반, 내가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입 밖에 내어 말한다면 그건 완전히 재앙일 거라고요! 반대로 당신이 나에 대해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한다면 분명 나한테 깊은 상처가 되겠지요. 확신해요. (60쪽)

마르크, 기쁨이란 건 말입니다, 기적이에요! 기쁨이나 기적, 벼락 같은 거죠. 그건 말이죠,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글쎄요, 우정이나 사랑 같은 감정, 그게 기적이지요.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런 기적들이 있어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믿어요. (113쪽)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치명적인 속성을 가진 노력이죠. 결코 성공하지 못하겠죠. 이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겁니다! (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