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은 추천사에서 18년이나 걸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완독했다고 고백하며, 이 책을 읽었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명확한 우리말 대치어가 없는 수 많은 종의 이름이 나오는 책을 번역본으로 완전히 이해하기란 애초에 높은 벽을 마주하고 시작하는 일이지만, 찰스 다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적당히 쌓인 관심이 있다면 꽤 좋은 동력을 얻을 수 있을 테고, 그런 후에 <종의 기원>을 접할 때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추천사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짧은 만화는 보기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다. 찰스 다윈의 생애와 그가 다룬 과학 이야기를, 유인원이 서술해나간다는 우스꽝스러운 구성을 유쾌한 대화로 채우며 만화의 효과를 충분히 드러낸다.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볍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전하면서 흥미까지 떨어뜨리지 않는다. 정작 <종의 기원>은 아직 도전하지 않았지만 다윈과 관련된 다른 책들은 꽤 접했는데, 다윈의 전 생애를 다룬 책 중 부담없이 다윈을 훑기에 단연 으뜸인 것 같다.

 

 

다윈과 그의 이론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100년도 더 전에 명을 다한 사람과 관련된 지난 일이며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의 가지가 파생되었기 때문에 21세기의 우리에게는 새롭게 재해석 될 수밖에 없다. 그게 여전히 유효한 이론과 역사를 대할 때 건설적인 태도이기도 할 테고. 다윈에 대한 이야기는 다 같은 내용이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또다른 책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유일신 신앙과 상충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내 경우에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가톨릭교 신의 시각에서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으니 다른 동식물과의 차이를 지닐 수 있다는 해석도 언급된다. 최근 <노아>에서도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처럼 비주얼라이징해서 보여주기도 했듯, 요즈음 어떤 종교에서는 애초의 개념보다 더 확장해 우주의 질서부터 신이 만들었다고 보는 것 같다. 유일신을 믿는 과학자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온 것처럼, 굳이 종교와 과학이 물어뜯고 싸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나야 신을 믿지는 않지만 우주의 기원까지 명확하게 밝혀낸 인간은 없는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종교인을 포함해 다윈을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갈수록 적어지는 것 같지만, 다윈을 토대로 과학이 더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 그로 인해 얻은 지식을 올바르게 쓸 수 있는 진짜 지성과 함께.

내일 결혼한다면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가구 같은 걸 사느라 돈이 많이 들겠지. 프랑스어도 못 배울 거고 미국도 못 가고 열기구도 못 탈거야. 아니,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봐, 벌써 주름도 생겼잖아. 따뜻한 난로 옆에서 아름답고 상냥한 부인과 함께 있는 걸 상상해 봐. 그러고 나서 우중충한 그레이트 말보로 거리의 현실을 떠올려봐. 그래, 결혼. 결혼하자. 결혼하는 거야! (63쪽)

 

 

현재 살아 있고, 앞으로 살아갈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생식 청사진을 간직한 거대한 한 가족입니다. 다윈이 생명의 나무를 그릴 때 예측한 것처럼, 지구 생명체는 모두 관계가 있습니다. (89쪽)

 

 

가톨릭교회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신의 눈으로 볼 때 사람이 특별한 이유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윈이 속했던 영국성공회도 진화론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성공회는 2006년 다윈의 진화론은 종교적 신앙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