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새 책으로 다시 읽게 된 호시노 미치오의 포토 에세이. 이전에 읽었던 <여행하는 나무>보다 조금 일찍 쓰인 글일까. 왜인지 더 풋풋하고 가벼운 느낌의 글이다. <여행하는 나무>는 더 묵직하고 경건한 느낌으로 읽혔는데,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는 더 활기차게 읽힌다. 번역자가 다른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만, 함께 수록된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들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봄을 맞이하며 흰 옷을 벗은 북극여우와 죽음을 맞이하고 새 여행을 시작하는 무스의 모습 등은 호시노 미치오의 글에 생기를 더하는 고마운 요소들이다.

 

 

호시노 미치오를 곰에 물려 죽은 알래스카의 일본인 사진작가로 알고 있던 것에서 나아가, 본격적으로 그를 그리워하고 좋아하게 만든 <여행하는 나무>가 이 책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기는 하다. 이 책에 얽힌 개인적인 사건의 불미스러움 때문에 애정이 얕아지긴 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때 더 화나게 만들었던 것 또한 이렇게 아름다운 책에 불쾌한 마음을 엮이게 했기 때문이었던 만큼, 이 책도 <여행하는 나무> 못지 않게 특별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좋은 책으로 기억될 것임은 분명하다. 아무리 나쁜 일에 연루되어도 그의 이야기와 사진이 주는 감동을 깎아내리진 못할 것이다. 온전히 느끼는 데 방해하는 요소 때문에 아쉬움을 느낄 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여행하는 나무>와 동일한 사건이 많다. 언급되었던 사건이 다른 각도와 다른 시점에서 다시 이야기되는가 하면,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른 날에 했던 그의 생각을 읽어볼 수도 있다.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았다면, 그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이 책의 이야기가 아주 생소할 것은 없다. 대신 그를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분을 주고, 그의 생각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준다. 한 번 읽고 스쳤던 그의 자연과 문명, 인간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다시 한 번 다른 각도에서 비춰짐으로써 더 선연하게 드러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호시노 미치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여행하는 나무>를 적극적으로 권하겠지만, 그의 사직작품과 함께 처음으로 접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를 권하고 싶다. 둘 중 하나 어느 것이라도,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다. 그의 삶은 읽으면 좋을 이야기라기보단, 모두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다.

자연은 가끔 이야기가 담긴 풍경을 보여준다. 아니, 우리를 둘러싼 풍경은 전부 어떤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이 그 퍼즐을 읽지 못할 뿐. (48쪽)

 

 

작은 장작불이 흔들리고 있다. 타닥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나의 마음을 풀어준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더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역시 묘한 거야, 사람의 마음이란. 아주 자잘한 일상에 좌우되면서도 새 등산화나 봄기운에 이렇게 풍족해질 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은 깊고, 또 이상할 만큼 얕다. 사람은 그 얕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104쪽)

 

 

현대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것, 보다 쉬운 살림으로 옮겨가는 것을, 거기서 살지 않는 사람이 어찌 비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들의 살림을 오래된 박물관 속에 가두어두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살림살이 역시 끊임없이 변해간다. (196쪽)

 

 

사람은 늘 무의식적으로 자기 마음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본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들려주는 무언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 풍경에 벌써부터 있었던 것이리라. (225쪽)

 

 

사람들은 저마다 두 개의 소중한 자연을 가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가까운 자연, 그리고 좀처럼 갈 수 없는 먼 자연이다. 먼 자연은 비록 가볼 수는 없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거기에 그런 자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 있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2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