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노섭과 마틴 루터 킹. 본의 아니게 흑인 인권에 대한 영화와 책을 연달아 접하게 되니 평소 깊게 생각하지 않은 인종 차별에 관한 인권 문제가 세삼 크게 다가온다. 서로 1백 년 가량 시간을 두고 활동했지만 두 사람이 주장한 것은 크게 보아 인간의 평등과 자유였다.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몇 십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뭉클함과 감동을 준다. 이들의 비범한 희생의 클래스가 대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특별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단하다'라는 수식어를 줄곧 달아온 마틴 루터 킹. 그의 업적 뿐 아니라, 그의 외로움과 고뇌, 삶의 위기까지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알뜰살뜰 담아낸 이 책은 마틴 루터 킹 평전 대열에 한 자리를 얻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 킹을 인용하고 묘사하며 그에 대한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져놓았다. 그들이 담은 마틴 루터 킹은 미국에서 활동한 인권운동가이자 종교인이었다. 사실 그대로였기 때문에 그의 삶이 특별한 것에 반해 그를 묘사한 방법들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마틴 루터 킹의 삶은 다른 곳에서 접할 때보다 인상적으로 와닿는다. 간결하면서 임팩트 있는 디자인으로 편집되었고, 매 지면이 인도의 아티스트를 통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책에서 마틴 루터 킹은 미국과 전혀 다른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인도의 선구자처럼 그려진다. 간디를 존경하고 닮고 싶어 했던 마틴 루터 킹에게는 이렇게나마 간디와 닮을 수 있는 또다른 이유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인도인처럼 묘사된 마틴 루서 킹이 낯설고 경우에 따라 불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로써 마틴 루터 킹이 더 많은 인류를 품은 듯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마틴 루터 킹 같으면서도 처음 알게 된 사람 같기도 한 생경한 느낌 덕에 그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미국인 인권운동가를 인도의 아티스트가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함께 그래픽 작업을 하고 미국 작가가 이야기를 쓴 책을 한국의 독자가 읽고 있는 상황은 그 자체로 인류대통합의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우리가 이런 재미있고 의미 있는 협업 없이 언제 또 인도 아티스트의 그림이 담긴 책을 소장할 수 있겠는가. 그림이 취향에 맞는 편은 아니지만 새로움에 즐거웠고, 꽤 가치 있는 작품으로서의 책 한 권을 읽었다는 점에 흐뭇하다. 

흩어진 조각을 잘 배열해야 좋은 이야기가 나오듯,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이해의 층을 정확히 쌓아올려야 해. (58쪽) 

 

 

찬란한 승리로 가득찼던 시절만 이야기하면 사실 재미가 없지. 그렇잖아. 쓰라린 패배가 있어야 영혼이 무르익는 법인데 말야. (106쪽)

 

 

물론 살다보면 안전하지도, 정치적이지도,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오지요. 하지만 그 입장이 옳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겁니다. (125쪽)

 

 

사람들은 예언이란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 반대야. 예언이란 사회적 행위를 통해서 운명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거야.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