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난 여름에 구입한 후, 짐처럼 느껴지는 경제경영 서적은 읽고 치워버려야겠다! 라는 굉장히 불순한 생각에서 읽어내기를 시작했다. 서점에서 눈에 보여 사긴 했다지만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게 신기할 정도로, 내가 이 책에 얼마나 무관심했냐 하면은, 저자가 그 유명한 '롱테일 법칙'과 '프리코노믹스'를 세계적 화두가 되도록 만든 크리스 앤더슨이라는 사실을 독서 중에서야 알았다는 점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시점에도 아니고, 한참을 읽고 난 후에 말이다. 왜 자꾸 롱테일 법칙을 잊을 만하면 한 번 씩 언급하는 건지 의아해하던 중, 독서중에 벗겨 두었던 양장 커버를 책장 정리 중에 잠깐 보았다가 깨달았다.

 

 

저자의 정체를 파악하고 나자, 인상적으로 읽고 있던 내용이 더욱 깊이 있는 통찰로 느껴졌다. 내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같은 맥락의 주제를 고민하고 연구해왔을 크리스 앤더슨의 이야기가 훨씬 신빙성 있게 들렸다. 그는 21세기의 새로운 제조업을 이야기 한다. 누구든지 아이디어만 있다면 '메이커'가 되어 예전에 비해 훨씬 간소화되고 저렴한 제작 과정을 거쳐 손쉽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20 퍼센트의 핵심 고객이 시장을 주도한다는 파레토의 법칙과 상반되는, 비핵심 고객인 80 퍼센트의 고객, 그래프상으로 보면 긴 꼬리처럼 보이는 이들이 시장을 주도한다는 그의 롱테일 법칙은 메이커스의 부상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어준다.

 

 

지금 내 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도 저자가 말하는 메이커의 활동과 유사점이 많다. 약간의 과정과 수단의 차이가 있을 뿐, 그가 말하는 모델에 내 아버지의 일이 부합하는 면이 많다. 내 아버지는 카드회사에서 보안 프로그래머로 시작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였고, 그 경력 덕에 자리잡은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전혀 무관해보이는 제조업을 하면서도 각종 전산화 된 작업을 활용하고 계신다. 대중과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수익을 낼 만큼의 규모는 되는 특정 취향의 잠재고객으로 구성된 틈새시장. 이것을 발견하고 제작한 상품을 적당히 알릴 수 있다면 희망적인 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소규모 메이커들 내지는 스타트업들의 상업활동은 '킥스타터', '쿼키' 등의 웹 기반의 업체들이 함께하면서 더 활발해지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투자금을 마련해주고, 아이디어 상품의 실제 제작을 도와주는 등의 이런 커뮤니티성 업체들은 제조업의 미래를 현실로 보여주었다. 아직 논란 없이 적용되려면 디테일 한 개정이 필요해 보이지만,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잡스법(Jump Start Our Business Startup Act)'이 통과되며 스타트업에 대한 크라우드펀딩이 가능해지기도 했다. 메이커들의 활발한 활동이 단 하나의 답은 아닐 수 있지만,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장을 마련하고 종국에 세상이 효율적인 상품들로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서도 잡스법과 비슷한 관련 법안을 중소기업청이 논의중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도 상당 수의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이를 활용하면서 말만 하는 창조경제가 아닌, 진짜 창조적인 경제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이 책만큼은 나도 메이커로서의 꿈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영감을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타고난 제조자다. 어린이들이 그림, 레고 장난감, 찰흙놀이에 보이는 관심을 보라. 사람들은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작업장이나 차고, 동굴에서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부엌 메이커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사람의 작업대는 스토브다. 마당에 식물을 심는 사람은 정원 메이커다. 바느질하는 사람, 구슬로 장식하는 사람, 수를 놓는 사람 모두 메이커다. (29쪽) 

 

 

새로운 틈새시장들의 공통점은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찾던 소비자가 기존의 시장에서 판매하던 물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더 나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업가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제품을 만들고 나면 추가로 생산하는 것은 쉽다. 이렇게 해서 가장 열정적인 소비자들이 틈새시장에서 소규모 사업가가 됐다. (111~112쪽)

 

 

개방형 혁신 환경에서 개발한 제품은 특허받은 기술만큼 법적 보호를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특허받을 때보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확률은 높다고 할 수 있다. 혼자서 비밀리에 개발할 때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개발하는 편이 더 빠르고, 싸고, 성과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163쪽)

 

 

웹은 사람들에게 학교 졸업장이나 자격증과 상관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준다. 웹은 사람들이 직업이라는 맥락에서 벗어나 함께 보여 작업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비공식적 조직은 기업보다 장소의 제한을 덜 받는다. 세계 각지의 재능 있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218쪽)

 

 

킥스타터 웹사이트는 스타트업 기업에 가장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시장조사다. 킥스타터에서 모금 목표액도 채우지 못한 제품이라면 출시해봤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하기 전에 손실위험 없이 소비자 반응을 살펴보는 기회는 대다수 신생기업이 얻지 못하는 귀중한 것이다. (245쪽)

 

 

21세기 제조업의 제품 개발 과정과 공장 제조 과정은 다음과 같이 바뀔 것이다. 제품 개발 과정은 인건비가 비싸도 가장 잘 혁신할 수 있는 나라에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해지고 있다. '공동 창작'과 커뮤니티 기반 개발이 가능한 사회가 유리하다. 다양한 분야의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제품 개발에 참여할 동기를 부여하는 사회가 유리하다. 가장 역동적인 웹 커뮤니티가 많은 나라와 가장 혁신적인 웹 기업이 성장하는 나라가 어딘지 보라. 이러한 나라들이 21세기 제조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3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