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1편을 보았을 때, 아버지가 구입하신 6권의 톨킨 원작을 읽기 시작했다. 영화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에 단번에 빠져들었고, 6권을 모두 읽은 후에는 원작 속의 기품을 가진 캐릭터와 영화 속의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를 결합하며 온전한 반지의 제왕의 팬이 되어 있었다. 영화 <호빗> 시리즈의 시작에 환호하고, 다시 매년 <반지의 제왕>을 기다리던 때를 추억하며 여전히 열렬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호빗>의 두 번째 시리즈,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이제 막 개봉을 했고, 팬으로서는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영화를 본 후 톨킨의 원작 <호빗>을 곧바로 구입했다.

 

 

<반지의 제왕>에 비하면 아주 작은 소품격인 이 <호빗>은 <반지의 제왕> 보다 먼저 쓰였고, <반지의 제왕>에서 디테일하게 펼쳐지는 세계의 미리보기와 같은 인상을 준다. 각 종족에 대한 간결한 설명이 병행되며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서는 기품 있지만 약간의 모험심이 내재된 배긴스('골목쟁이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성을 의미로 해석하는 건 마뜩잖다) 가문의 빌보라는 호빗의 뜻밖의 여정을 가볍게 그리고 있다. 굉장히 신비롭고 웅장한 여정이지만, 번역으로도 잘 느껴지는 톨킨의 만담 같은 어조 덕에 유쾌하고 귀엽다. 특히 고향 땅의 녹색 빛과 풍족한 음식, 여유롭고 아늑한 생활을 좋아하는 호빗의 자연주의적인 마인드는 난쟁이의 물욕과 대비되며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 속 이야기를 몇 번 씩 보고 원작을 읽는 입장에서, 영화와 원작 간의 차이를 유념하며 볼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에서 좋아하는 빌보의 귀여운 면모나 난쟁이들의 익살스러움은 오히려 책에서 더 적절하게 묘사되고 있는 듯했다. 한편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숲속 요정들의 액션이나 스마우그에게 금장을 입히는 장면 등은 모두 영화에서 별도로 각색하며 추가한 장면들이었다. 물론 약간 뜬금 없었던 로맨스 또한 영화에만 있는 부분. 이야기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톨킨의 원작이 훨씬 가치를 지니는 듯하지만, 다리를 '대롱대롱' 흔드는 빌보의 모습을 마티니의 자태로 마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을 형상화 해준 영화의 가치 역시 저평가 하기 어렵다.

 

 

요즈음 <호빗> 개봉에 맞춰 전편 연속으로 수시 재방되고 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다시 보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여기에 더 맛을 더하려면 이 원작도 빼놓지 않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 영화와 원작 간에는 마치 다른 세계처럼 분리되어 있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영화의 각본으로 각색하며 어떤 부분에 영감을 받았고 어떤 것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 재미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이가 생기면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지는 법. 이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유물이라고 할 만하다. 서두르자, 좋아해왔다면 지금 타도 막차다. 

반지를 원한 것은 그것이 마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밝은 햇빛이 비칠 때에만 보이는데 그것도 희미하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일 뿐이었다. (125쪽) 

 

 

여기서 그들은 나무 의자에 앉았고 간달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빌보는 대롱대롱 다리를 흔들며 정원의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 꽃들의 절반은 전에 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이름이 뭘까 궁금했다. (170~171쪽)

 

 

바로 이거다. 난쟁이들은 영웅이 아니었으며, 금전의 가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셈에 밝은 족속이다. 어떤 난쟁이들은 교활하고 배신을 잘 하는 상당히 나쁜 녀석들이었지만, 어떤 난쟁이들은 소린과 그의 동료들처럼 점잖은 축에 속했다. 그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275쪽)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많은 일을 함께 겪은 친구들을 이렇게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정에 늙은 봄부르를 깨우기로 약속했거든요! 정말로 가야겠습니다. 그것도 빨리요!" 빌보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