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을 잘 하는 척도 중 하나로 맛있는 과일을 고르는 것을 뽑는 사람과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당장 살림을 할 것도 아니지만 맛있는 과일을 능숙하게 분간할 줄 모른다는 점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직접 고르는 일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손수 고른 과일을 맛볼 때에도 정말 맛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들곤 한다. 맛이 좋다며 권한 과일을 용기내어 베어 물었지만 기대한 맛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어쩐지 배신감이 들어 흥미가 똑 떨어진다.

 

 

이 책의 저자 조향란 대표는 '썸머힐상사'와 '올프레쉬'라는 제철과일 브랜드의 대표이자, '과일 소믈리에'로 불리는 화제의 인물이다. 지나가며 한남동 매장을 보고 입소문으로 품질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명품 과일을 자처하는 고급 브랜드 중 하나일 뿐 서민과 거리가 먼 업체라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녀의 사업 배경에 어떤 철학과 노력이 있었는지, 여느 성공 기업인들에게 으레 그렇듯 조명되기 전까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추구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언제나 맛있는 과일을 제공하는 일이라기에 솔깃해졌고, <과일 CEO>라는 제목을 달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의 행동에 무언가 특별함이 있겠구나 싶어졌다.

 

 

<과일 CEO>에 관심을 가진 또 하나의 이유는 소비자와 농가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논리 아래에서는 대량 생산으로 인해 질이 떨어지는 과일을 얻을 가능성이 크고, 거래의 주도권이 기업에 있다는 점에서 농가의 건강한 발전을 이끌어 내기 어려운 환경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저자 또한 이러한 부분과 맞닿은 논리에 공감했던 것 같다. 그녀는 맛있는 농가를 직접 찾아 품질을 관리하고, 그 각 농가들이 믿을 만한 다른 농가를 교육하는 식으로 일종의 피라미드식 품질 관리에 성공했고, 현재도 계속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성장해 나가는 듯 보인다.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지만 여러 가지 고비가 있었음에도 그녀의 확고한 철학과 의지, 이것들을 뛰어 넘는 노력으로 극복하는 과정도 꼼꼼히 거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이야기를 꽤 만날 수 있었다. 아무리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이어도 틈새를 노려 바른 생각을 가지고 소신껏 정진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 어디까지나 영리한 판단과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인드를 지닐 때 그 신화도 가능하다는 현실의 기반, 그리고 한 개인이 더 좋은 질의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게다가 사업 뿐 아니라 삶의 선배이자, 같은 여성으로서 톡톡히 도움이 되는 직설적인 조언까지. 맛에 대한 불안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제철 과일을 제공해주는 것이 오히려 덤으로 느껴질 만큼, 영양가 풍부한 이야기들이 진행중인 한 인생에 담겨 있다니, 이 인생도 참 매력적이다.

어떤 사업이든 우리의 일상생활을 제품에 제대로 반영했을 때 생명도 길고 성과도 좋다. (74쪽)

 

 

시장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고객은 늘 변한다. 삶은 그래서 한 번 뿐이다. 오늘 성공이 내일로 이어지지 않고, 어제의 경력이 내일의 일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일이 처음이고,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134쪽)

 

 

배움이란 마치 콩나물시루와 같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은 시루 아래로 빠져나간다. 겉보기에는 그냥 물이 새버리는 것 같지만 어느새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란다. (141쪽)

 

 

강한 사람이 관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약하거나 능력이 없으면 관대하고 싶어도 관대할 수 없다. 내가 힘이 달리니 당연히 매사에 민감하게 따지고 드는 것이다. 그 까짓 것! 하고 넘길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도 더 많이 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182~183쪽)

 

 

노년을 평화롭게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귀농을 선택한다면 100% 실패하기 십상이다. 농촌 또한 도시 못지않게 성실함과 노력이 필요한 생활공간이고,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것이다. 도시처럼 수직적인 관계는 아니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인간관계를 맺어야 살 수 있다. (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