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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의 글은 인문학도였던 이가 읽기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상의 원리를 궁금해하는 이에게는 그게 누가 되었든 어울릴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세상이 어떻게 탄생하고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숨 쉬고 있는지 궁금한 적격의 독자이지만, 역시 인문학도이기에 조지 가모프라는 저자의 이름은 낯선 외국 이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는 순간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우주론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빅뱅 이론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반대론자의 조롱으로 이름이 붙여지며 저주가 생긴 건지, 코믹한 미드와 글로벌 아이돌의 이름에 쓰이며 위상이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빅뱅 이론이 설명해줄 수 있는 세계의 존재 원리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위대하다.

그런 아름다움을 소신 있게 주장했던 조지 가모프가 쓴 이 책은, 유네스코가 과학의 대중문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칼링가 상을 받은 책으로 1947년에 쓰여졌다. 칼링가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군더더기 없이 알려주고 있듯, 그는 이 책에서 수의 개념부터 시작해 시공간과 물질의 원자, 생명의 체계로 뻗어 우주의 원리까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아주 쉽게 세계를 설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 책을 어린 아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그가 이 책이 아동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들이 책을 읽고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을 설명해주었을 때라고 직접 적어두었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그의 아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던 만큼, 세계의 원리가 아주 단순한 것만은 아니기에 아무리 대중적으로 표현하려 해도 현대 과학의 수준을 풀어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명은 어떠한 과학 교양서보다 평이한 문체와 일상적이고 명쾌한 예시로 이루어져 있다. 설명은 쉽게 하면서 깊이도 놓치고 있지 않기에, 수학적 내지 과학적 지식이 깊지 않은 나같은 일반 독자의 경우에는 상세한 수식이나 전문용어를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흐름과 대강의 논리만 이해하고 따라가도 우리가 사는 우주의 초상을 윤곽선 정도는 어렴풋이 그릴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꽤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솔깃하게 기울여 듣고, 교양 수준의 다큐멘터리나 서적을 챙겨 보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는 전혀 없었지만, 또 한 번 머리에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으니 말이다. 또한 전문지식이 얕다 보니 과학적 문장들이 아주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으로 보일 때가 있었는데, 엉뚱하지만 나름대로의 새로운 의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을 어떻게 접하든 받아들이는 이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사물들 한복판에 있을 때는 그것들을 똑바로 보기가 어렵다. (109쪽)

어떤 물체도 광속과 같거나 광속보다 더 빨리 여행할 수 없다. (165쪽)

광학에 의하면 빛은 항상 가능한 최단 경로를 택하기 때문에 광선은 상당히 좋은 도구이다. (170쪽)

분자들의 불규칙 운동에 의존하는 모든 물리적 과정은 확률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며,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형 상태는 최대 확률에 해당한다. (330쪽)

과학에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항상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415쪽)

별마다 행성계가 있다면, 우리 은하 안에만 해도 지구와 똑같은 물리적 조건들을 갖춘 행성이 수백만 개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고등 형태인 생명이 이런 '서식 가능한' 세상에서 발달하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굉장히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4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