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출간되었으니 대형서점에서는 구간 취급을 받기에 충분한 책인데, 종로의 대형서점에서 중앙 통로에 옆 얼굴이 아닌 정면을 바라보며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출간 당시 구입했지만 홍보를 어마어마하게 하는 메이저 출판사의 책도 아니고 이렇다 할 화제에 오른 적도 없는 데다 유럽인들이 아니고서는 쉽게 좋아해주지 않는 프랑스 작가의 에세이이다 보니, 소수의 독자나 관심 가질 책이라고 생각해왔다. 두고두고 묵혀도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쉽게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책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금액을 맞추려고 마땅한 신간을 뒤적이다 샀던 것이다. 질문형인 제목이 왠지 도발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구입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충동구매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런 책을 대형서점 중앙 통로에서 만났으니 호기심이 일 수밖에.

 

 

책이 얇아 다행이지, 이 두 배 정도의 분량이었다면 중간 즈음부터 설렁설렁 넘겨가며 읽었을 지도 모르겠다. 10분만 늦게 보기 시작해도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드라마는 시작부터 놓친 드라마는 절대 보지 않는, 완전히 보아야 비로소 보았다고 느끼는 내가 중간을 스킵한다는 것은 보통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휘리릭 넘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프랑스 지식인의 글에서 종종 느껴온 것인데, 그들은 지나치게 비판적이면서도 그런 자신이 굉장히 쿨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말은 내가 부족하다 라고 하지만 떨칠 수 없는 자만감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전에 읽은 미국의 편집자 앤 패디먼이 보여준 자부심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의 단호하고 날이 선 비평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면 다른 의견을 내놓았을까. 확실히 그의 글에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많은 가지로 뻗어나가며 글의 주제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독서의 이유와 방식들에 대해 썼는데, 자신의 생각을 담는다고 보기에는 디테일한 부분에서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큰 주제로 보았을 때 같은 이야기로 통하는 것들이며, 한 사람의 의견이 언제나 한 가지로만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독자로서 혼란스러울 정도라고까지 느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수상 내역이 말해주듯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부분과 문학적인 표현들이 수두룩하기는 했다. 앞에서 자기 스스로 작가에 대해 혹평하는 일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는 함정은 있지만, 인기 작가에게 신랄한 비판을 쏟는 것도 신선하기는 했다. 아무래도 현학적인 분위기는 시종 변함 없었지만 말이다. 누구나 도무지 호감가지 않는 저자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의 판단 근거는 책 속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작가의 재능에 있다. 우리가 닮고 싶은 것은 등장인물이나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재능이다. (32쪽)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39쪽)

방금 독서를 마친 독자들은 거친 심해를 탐험하다 막 육지로 올라온 잠수부마냥 눈이 몽롱하고 호흡 또한 느려져 있다. 그들에게는 현실세계로 되돌아올 시간이 필요하다. (176쪽)

난 수영을 좋아한다. 좋아하지만 짜증난다. 짜증이 나면서도 좋아한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대상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기를 원한다. 거짓말을 좋아하는 본성 때문이다. (194쪽)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2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