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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 연관 깊은 삶을 산 부모 밑에서 그녀만큼이나 책을 사랑하는 오빠와 함께 자라, 못지 않게 책을 아끼는 글쟁이 남편과 결혼한 편집자 앤 패디먼. 자라온 환경부터 현재의 삶까지 그녀의 생에서 책을 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책에 대한 애정을 개성 있는 문장으로 한껏 표현했는데, 그녀의 학구적인 환경과 그러한 환경이 키워주었을 책에 대한 그녀의 강한 소신이 참 부럽다. 요즈음은 책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나 또한 책에 대한 애정이 결코 적지 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누구라도 앤 패디먼 만큼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책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은 어떤 면에서는 십분 공감이 가고, 또 어떤 면에서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게 되기도 했다. 교정 교열에 대한 본능에 가까운 집착이나 읽을거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강박 같은 점은 한 문장 한 문장에 고개를 연신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언어 사용에 대한 다양한 지적질을 얼마나 숱하게 참아왔던가. 작은 오류도 넘어가지 못하는 패디먼 식구들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나를 깊게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그 집안 식구들의 거친 스타일은 그녀가 말하는 궁정식 애서가인 내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헌책에 대한 그녀의 예찬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 아닌 경우에는 내 삶과 거리가 먼 듯한 이야기였다.

책에 대한 애정 말고도, 그녀가 남편 조지에게 갖는 애정, 또 그가 그녀에게 보여주는 애정도 보는 내내 행복하게 했다. 책에 대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좋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만큼이나 애서가이지만 취향이 상반된 조지와 산다는 것은 부딪칠 구석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자기 취향에 대해 강하게 집착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런 결혼 생활은 마치 고문과도 같겠지만, 그녀는 다행히 자신이 우긴 듯하면서도 합리적인 방법들로 조지와의 타협점을 찾아냈다. 내게 좋아보였던 것은, 그러한 부분을 수긍하고 그녀의 책에 대한 애착을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같은 것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아닐까.

앤 패디먼은 책에 대한 책을 결코 지나칠 수 없다고 말한다. 좋은 헌책방에는 책에 대한 책을 진열한 서가가 있다고도 짚어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책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궁금해하는 심리가 책을 읽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여길까 생각하고 확인하는 일. 보통은 자신의 생각과 같아야 안심하고 기분이 좋아지곤 하는데, 이 경우에는 타인의 생각이 내 것과 동일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느끼고 덮을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시니컬하면서도 적당히 건조하고 기발한 유머가 깃든 앤 패디먼의 책 글이 있다는 것은 더욱 흥미롭고 말이다.

책들은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써 나간다. 책들이 우리 서가에(또 창틀에, 소파 밑에, 냉장고 위에) 쌓이면서 그 한권 한권이 우리 삶의 이야기의 한 장을 구성하게 된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15쪽)

실제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못할 때, 우리가 매콜리처럼 "비현실 속에서" 살기 위해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책의 물리적 환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가까이 갈수록 더 좋다. (99쪽)

나는 특히 워드프로세서로 친 편지를 수상쩍게 생각하는데, 거기에서는 판에 박힌 문구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워드프로세서로 친 주소는 더 느낌이 나쁘다. 우편함을 열었을 때 겉봉에 얼굴만큼이나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필적이 적혀 있는 옛 친구의 편지를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134쪽)

두 분의 책을 합치면 7천 권쯤 되었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할 때마다 목수가 와서 4백 미터 길이의 책꽂이를 짰다. 그리고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면 새 주인은 책꽂이를 뜯어 버렸다.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벽이 벌거벗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는 사진의 평평하고 하얀 배경이 될 만한 벽이 존재할 수 없었다. 벽 자체가 예술이었다. (171쪽)

좋은 헌책방에는 대부분 "책에 대한 책" 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가가 있다. 신간을 파는 책방에 그런 서가가 없다는 점은 독자들의 관심의 변화를 우울하게 반영하는 동시에 다음에 이야기할 책들 가운데 다수가 절판된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사실 몇 권은 절판된 지 이미 백 년이 지났다.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