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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유명세와 프랑스에서의 극찬을 보며 기발한 소설을 기대하며 아껴두었다가 읽었다. 하지만 책 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말해주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인기 이유, 즉 박학다식함과 비판적 시각 등에서 더글라스 케네디 만의 장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딱히 발견하지 못했다. 책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해낸다는 점과 그 내용에 있어 <죄와 벌>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보거나 읽진 않았으나 죽은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는 컨셉에서 <화차>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당히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호소력이 꽤 있을 법한 시나리오로 다듬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매끄러운 전개이긴 한데, 그만큼 특별히 마음에 새기며 고민할 만한 구석이 없다. 작품만으로 이렇게까지 인기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한 것 같다.

사진가의 꿈을 가진 월 스트리트의 변호사 벤이 아내와 간통한 사진가 게리를 죽이게 되는데, 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로서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벤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유능하고 꽤 가정적인 벤에게 매몰차고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아내의 처신 또한 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한다. 문제는 벤이 저지른 살인이 심심찮게 뉴스에서 만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아무리 부당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리한 벤 또한 이것을 이해한다. 이참에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고 있고 아내가 자신 대신 사랑한 게리의 삶, 애써 무시해보려 했지만 실은 살아보고 싶었던 게리의 삶을 결국 대신 살기로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버리고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일이 쉬울 수는 없기에 벤의 심리적 혼란과 순탄치 않은 외부 상황까지 끊임 없는 혼란이 발생한다.

어릴 적부터 원하던 삶이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하면서 작은 취미로만 꿈을 가둬두는 사람들에게, 최선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내재된 재능을 표출하라는 메시지.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만하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바꿀 용기는 없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자기 삶이 본인의 몫으로 살아가야 할 삶임을 깨달으라는 메시지. 이 두 가지가 이 소설의 가장 중심적인 포인트일 것 같다. 살인 사건 이전에 착실한 삶을 살아온 벤이 피해의식에 휩싸이면서 커다란 문제의 고리에 빠져들게 되는 것을 보며, 어쩌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쟁취하지 못하는 것 또한 오늘날에는 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 경제적 여건을 충족시킨 후에는 못 이룬 꿈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는 게 행복한 인간이 되는 조건인가. 진취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쉽지 않은 문제 외에 또 하나의 채찍이 늘어난 것 같아 부담스럽다.

나는 브라우니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본 순간 그 즉시 사로잡혔다. 마치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개의 이미지로 시야를 좁힐 수 있어 주위 모든 사물을 다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여섯 살짜리 꼬마를 가장 크게 만족시킨 건 렌즈 뒤에 몸을 숨긴 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꼬마는 카메라 렌즈를 자기 자신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벽처럼 사용했다. (12쪽)

"내 말 잘 들어, 친구.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 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119쪽)

'물질적 안정' 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가짜일 뿐이고, 언젠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등에 짊어진 건 그 물질적 안정의 누더기 뿐이라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언젠가는 그 모든 걸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251쪽)

"…극복이 안 돼 그냥 덮고 사는 거야. 그냥 눈에 안 띄게 밀쳐 둔 거지. 그 일은 나만의 어두운 방이 되었어. 내 머릿속 한 곳에 그 어두운 방이 늘 존재하지. 아무리 애써도 없앨 수 없는 방. 영원히 함께할 수밖에 없는 방." (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