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가벼움>에 반했던 때가 지금보다도 더 어릴 때여서인지, 그때보다는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세 번을 읽고서야 어렴풋하게나마 감상을 가질 수 있었던 그 책에 비해서, <농담>은 첫 도전에서부터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로는 이것이 두 번째이기에 그의 소설들을 한 데 묶어 말하기에는 아주 조심스럽지만,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에 아주 진지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답하는 것 같다. <농담>의 경우, 확장해보면 인간 사회에 대한 커다란 이야기지만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 루드빅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고 빠져들게 된다. 현실과 소설의 허구가 만나는 경험 덕에 이 소설은 힘을 갖는다.

 

 

주인공 루드빅은 단 한 장의 쪽지에 담은 세 마디의 짧은 농담 때문에 자신이 헌신하던 사회로부터 추방된다. 그는 자신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세상에 분노하며 복수를 꿈꾼다. 루치에를 향한 강렬한 사랑을 느끼고 그녀의 육체를 탐하지만 유아적 사고에 갇혀 있는 루드빅에게 사랑은 자신 안에서만 작동되는 이기적인 욕망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사랑이 진실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밖에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루드빅은 루치에를 다시 만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또한 자신에게 추방 선고를 내렸던 제마넥과 그의 아내 헬레나를 만나 꿈꿔왔덕 복수를 하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달을 뿐이다. 과거 자신이 추방되었던 것은 자신이 뱉은 농담 때문도, 자신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때문도 아닌, 애초에 농담 같은 세상이기 때문이라는 것과 함께.

 

 

유치한 농담도 쉽게 내뱉을 수 없던 시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겠지만, 지난 일에 대한 복수의 부질 없음과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표현으로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는 동안 과거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세상은 달라져가는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다거나 복수를 감행하고자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며 당시의 사실보다는 감정으로 남기 쉬운 것인데, 옛 기억에 의존해 복수를 바라며 레이스를 달린다는 건 현실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지 않을까. 루드빅이 고향으로 돌아와 옛 친구 야로슬라브와 연주를 할 즈음, 분노로 가득차 있던 그의 세계가 한 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과거에 대한 분노가 루드빅을 15년 동안 살게 한 힘의 원천이었을 수는 있지만, 그가 살았던 15년을 최선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나는 위선자들처럼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49쪽)

 

 

나는 텅 빈 홀에 남아 있었다. 내가 이렇게 혼자이도록 명한 것이 꼭 루드빅이었던 것 같다.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므로. (227~228쪽)

 

 

내가 얼마나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가 하면, 누가 자기는 무어가 좋고 무어가 싫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으면 그것을 절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257쪽)

 

 

어떤 사람들은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에 반대하여, 우리는 개별자로서만 개개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타당한 주장을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며, 사랑에 대한 그 말이 증오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덧붙이고 싶다.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그러나 이 증오를 순수히 추상적인 원리들, 불의, 광신, 야만성에 집중시켜 보라! 아니면 당신이 인간의 원리 자체마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인류 전체를 한번 증오해 보라! 이런 증오는 너무나 초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분노를(인간은 이 분노의 힘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가라앉히고자 할 때 결국 분노를 한 개인에게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법이다. (373쪽)

 

 

과거에 최면이 걸린 나는 어떤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놓으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 며칠 사이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자동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그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다. 그렇다, 내가 제마넥 앞으로 나아가 그의 따귀를 때렸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대학 강당에서, 제마넥이 『교수대 아래에서 쓴 르포』를 낭독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였고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야닝 아닌 다른 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3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