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이름과 말투 때문인지 아무리 영화로 친숙해져보려 해도 어렵다. 여인들의 이야기어서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었는데, 평소 어려워 한 장수들과 관련된 여자들인지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나마 여인 각 개인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어 전반적인 흐름이나 인물에 대한 이해는 다른 책에 비해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마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중간중간에 간략하게 적혀 있어 도움 받기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앞에 나온 인물이 뒤에도 계속 나오는 식이어서 깊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결국 삼국지 내용을 어느 정도 꿰차고 있어야 한다. 나는 어릴 적 게임과 헐리웃 스타일의 최근 영화들로나마 들어본 적 있는 이름과 사건들만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 나머지 부분들에서는 별개의 이야기처럼 읽는 데 만족해야 했다.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면 보다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 책 속 중국 여인들의 삶이 대부분 비슷하게 느껴져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용모가 뛰어나고 지혜로워도 시대를 잘못 타서 비운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여성 단체들의 힘이 거세지고 있고 여권이 놀랍도록 신장한 시대에 여성으로 살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로서 살기에 좋아진 세상이라고는 절대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중국어를 번역한 책들에서 느껴지는 딱딱함이 이 책에도 있어 지루함을 더하긴 했지만, 당대의 고위층 여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에는 유익한 책이다.

 

 

 

 

사내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인들은 일방적으로인내하고 희생하며, 심지어 생명이나 육체를 바쳐야 한다고 항상 강요받는다. 게다가 제대로 된 평가 한 번 받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거나 버려진다. 그녀들을 버리는 행위를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충효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남겨진 슬픔이다. (65쪽)

 

 

한 왕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라와 백성을 위해 가녀린 몸으로 커다란 위험을 짊어지고 제 한 몸 바친 초선의 행동은 그저 죽음을 각오하며 무작정 저지르는 행동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우스운 사실은 여장부라고 불리는 초선을 봉건사회의 남존여비라는 관점에서는 '여자는 요물덩어리'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동탁과 여포 부자가 미색을 탐닉하다 이성을 잃고 서로에게 칼을 겨눴기 때문에 국적 동탁이 죽게 된 교훈을 굳이 살펴본다면 초선에게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