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먹고 사는 것이 곧 인생이다'라고 많이 말하듯, 우리 삶은 먹는 것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으니 삶이란 것은 애초에 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김훈 작가도 말하듯 먹는 것은 '지나면 다 헛것'이라고 느껴질 만큼 몇 시간만 지나면 다시 공복이 시작되니, 사는 것은 먹기를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훈은 그래서 밥을 '무섭다'고 한다. 먹는 것이 이토록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일까. 저자는 음식으로 현대 한국 문학을 한 데 모았다.

이 책은 음식과 관련된 오늘 날 우리 작가들의 책 열 댓권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란히 실어도 과연 적절할까 싶은 작가들도 있긴 하지만, 인터뷰 가능성이라든지 여러 뒷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관심 가져본 적 없던 작가에게 새로이 흥미를 느끼기도 했기 때문에 작가 선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저자는 직접 꼽은 책들의 작가들을 만나 책 속의 음식 이야기와 이를 통해 그들이 담고자 한 메시지를 듣는다. 음식은 우리 일상의 가장 상징적인 것일 텐데, 그래서인지 작가들의 이야기는 대개 작가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에 대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한발치 떨어져서 이해해보게 되는 구절들도 많지만, 나도 언젠가는 글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싶기에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며 읽었다.

사보 회사에서 꿈과 현실의 괴리를 느낀 뒤로 글 쓰는 일에 대한 열정이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내 삶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다. 그래서 목표는 바꿀 수 있지만 꿈은 바꿀 수 없기에 지칠 새 없이 신춘문예 응모를 했다는 백영옥 작가의 말이 그녀를 작가로서 전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름 석자를 기억하게 했다. 부산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면서도 환갑을 앞두고서 등단한 허택 작가가 희망을 주었다. 나와 똑같이 기승전결이 있고 SF적 소스가 풍부하게 내재되어 있으며 한 편의 이야기로 기록이 가능한 꿈을 꾼다는 조현 작가는 나에게 상당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요즈음 나는 접하는 소스가 부족해서인지 예전만큼 매력적인 꿈을 꾸지 못한다. 집에 1만 5천 권의 책이 있다는 조현 작가의 영감은 그 책들에서 오는 것 아닐까.

내 꿈인, 내 삶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으려면 중년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당장은 그저 열심히 내 자리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내 꿈을 위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래의 내 모습처럼 너무 기본적인 삶에만 집중하다가 정작 꿈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싶다. 최근의 저조한 독서량과 황폐해진 꿈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가슴 뛰게 하는 일이 줄고 있는 것을 느낄 때면 섬뜩하다. 밥벌이와 그 일의 벌이로 먹고 사는 데 급급해 궁극적인 것을 잊고 사는 기분이다. 이 책에서 작가들이 말하듯 꿈을 위한 동력,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저를 보면 묻습니다. '당신에게 바다는 무엇인가'라고. 참 어려운 질문이죠. 아직도 그 답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섬에서 태어나 바다를 벗 삼아 살아왔지만 바다가 뭔지 다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알고 있는 건 산은 풀어진 것을 맺게 하지만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낸다는 겁니다. 고시 공부할 때, 뭔가 인생의 중대한 결심을 할 때는 주로 산을 찾습니다. 거기서 어떤 형태든 매듭이 지어지거든요. 반면 실연당했을 때, 뭔가 인생의 뼈아픈 상처를 입었을 땐 대개 바다를 찾습니다. 바다가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확 풀어주기 때문이죠. (26쪽, 한창훈)

작가라면 동시대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작가란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재료로 삼아 허구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존재이지만 그 개인의 경험 역시 동시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거죠. 따라서 시대에 애정과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작가로서 불구의 모습을 띠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86쪽, 김재영)

지나간 밥은 다 똥이죠. 이것이 밥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이에요. 매하고 같은 거예요. 나는 아까 밥 먹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밥이란 게 도대체 뭔가. 꼭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만 밥이고 지나고 나면 말짱 헛것이 되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열흘을 굶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한 끼를 안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두 끼를 안 먹으면 몸이 작동하지 않아서 누워 있어야 해요. 세 끼를 안 먹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죠. 나느 정말 밥이 무서워요. 아까 바다에 나가서 낚시하는 걸 봤는데, 물고기가 미끼를 물잖아요? 그놈은 뭘 먹으려다가 자기가 먹이가 되고 마는 거예요. 그걸 보니까 낚시하는 사람들이 참 불쌍해 보이더라고요. 참 저걸 재미라고 저러고 있나 싶어서. (141쪽, 김훈)

지금 보세요. 연애도 사랑도 결혼도 다 비즈니스인 세상 아닌가요? 자식하고 마누라, 가장의 관계가 비즈니스가 되고 말았어요. 남편이 돈을 못 벌면 이혼을 하고 아비가 돈을 못 벌면 아버지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이게 비즈니스지 뭡니까. 남편이나 아비가 따 오는 과실에 의존해서 비즈니스로 먹고살다가 못 따 오면 버리는 거 아닙니까?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획일화되고 만들어진 가짜 자유, 그런 것들을 욕망이 빚어낸 어떤 폭력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그것은 가정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202쪽, 박범신)

요즘도 책을 많이 읽기는 하지만 독서량이 많은 게 꼭 좋은 건 아니에요. 읽은 만큼 책임감이 따르는 거잖아요.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독서로 얻게 된 교양이 삶의 윤활유가 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부끄럽죠. (266쪽, 조현)

옛날에 분식집을 하려고 시장엘 갔는데 아줌마들 얼굴이 막 돈으로 보이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그때 제가 기도를 했어요. 돈을 모르고 장사하게 해달라고 말이죠. 요즘 사람을 많이 쓰는데 그분들 월급 다 주고 저도 먹고 살고 다 해요. 지금도 저는 한 달에 제가 얼마나 버는지 자세히 몰라요. 주먹구구식으로 하니까요. 그래도 참 행복해요. 지나가다 어려운 사람 만나면 많이는 못 도와줘도 3만 원 정도는 줄 수 있어요. 그러면 부자지요, 제가. (343쪽, 강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