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6개월 차. 이제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 감을 잡은 정도다.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리둥절하기만 했던 때에 비해서는 나아졌고, 회사 생활이라든지 클라이언트와의 전화 통화에서 처음에 비해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회사에 대한 이해와 직무에 대한 정보를 몸소 체험하며 알아가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고 있는 것은 물론, 황당하다 싶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오픈한 사이트와 관련된 정여사스러운 유저의 요구를 마주할 때면 종종 감정 컨트롤에 실패하게 된다.

 

 

이렇다보니 이사님께서 추석 즈음 상담을 해주셨다. 안 그래도 일전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며 조언을 해주셨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이야기와 함께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조언을 주셨다. 책을 좋아하는 걸 알고 계셔서인지 상담 후 책 한 권을 건네주셨고,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FBI 협상전담반의 공식교과서'라고 쓰여 있어서 신뢰가 가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추천을 받은 책이어서 약간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어, 비슷한 류의 설득 기술을 알려주는 책들보다 더 집중해서 읽었다.

 

 

원제인 'Just Listen'에 비하면 조금 촌스러운 제목 같지만 '뱀의 뇌'라는 단어가 들어간 독특한 제목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뱀의 뇌'가 사악함 종교적 은유일 것이라고 얼핏 생각했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파충류의 뇌-포유류의 뇌-영장류의 뇌'에서 제목을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진화에 따라 발전된 이 뇌의 단계들은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뇌-감정적인 뇌-논리적인 뇌' 정도를 의미한다.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영장류의 뇌의 작동은 스타트랙의 스팍과 같은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기까지는 파충류의 뇌에서 포유류의 뇌까지의 단계를 차례로 거치는데, 단계 이동의 시간이 빠를수록 감정 컨트롤에 유능한 사람이 되고 설득 상황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내용에 근거해 뇌의 단계 이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을 알려준다. 대부분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 내가 직접 설득하는 것보다, 나의 행동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가 마치 자발적으로 설득되는 것처럼 만드는 기술들이다. 이것도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은 아니며, 노력하지 않으면 외부에 있는 정보일 뿐이다. 이것은 꾸준히 상황에 맞서 이해한 기술들을 상기해내고, 체득할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한 조언을 하고 있는 '책'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부족함을 낱낱이 들킨 것이기도 하기에 읽는 내내 뜨끔함을 느껴야 했지만, 콕 집어 추천 받았을 정도로 내게 딱 필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연습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내 변화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운일 수 있겠다.

 

 

 

이 책의 핵심이자,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사람들을 '바이 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이 인'의 단계는 바로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저항'하다가 '경청'하게 되고,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에 일어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을 '바이 인'하게 만듦으로써 설득의 사이클로 이끄는 열쇠는 바로 '당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게 만드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27~28쪽)

 

 

파충류의 뇌 위를 포유류의 뇌가, 다시 포유류의 뇌 위를 영장류의 뇌가 싸고 있으며, 각각의 뇌는 진화과정에서 더 먼저 생긴 뇌를 바탕에 두고 작동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의 판단은 '히스토리'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판단이 무조건 틀리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처음의 '본능적인 느낌'이 아주 정확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본능이 틀렸을 때, 결과가 더욱 파괴적이라는 점이다. (68쪽)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될 때, 나는 상대가 이런 표현으로 말문을 열며 대답하도록 유도하는 편이다. "내가 느끼기에는…Feel", "내 생각엔…Think", "내가 ~했을 때Did" 혹은 "나는 ~하고 싶은데would Do". 나는 이것을 FTD 화술이라고 부른다. '감정'과 '생각'과 '행동',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만 언급한다면, 상대를 충분히 알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 세 가지에 대해 충분히 대답했을 때, 상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고 만족감을 느낀다. (101쪽)

 

 

마술적 패러독스는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상대의 입에서 'Yes'라는 대답이 쏟아녀 나오게 만듦으로써("예, 당신 말이 맞아요. 내 인생은 엉망이에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당신은 그의 태도를 '부정'에서 '인정'으로 변화시킨다. 일단 당신의 말에 동의를 하고 나면, 상대는 되받아치기보다 감정적으로 협조할 준비가 된다. (184~185쪽)

 

 

신입에다 경험이 없다는 점에 대해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을 맡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확신을 발산하면 다른 사람의 확신을 고취시킬 수 있다. 불안을 발산하면 모든 사람이 그걸 느낀다. 그러니 당신이 회사 역사상 최고의 관리자인 척해라. 그리고 가서 그 사실을 증명하라. (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