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3부작인데 영화는 4부작이라기에 어느 부분을 늘려서 4편으로 만든 것일까 생각했었다. 당연히 1부를 둘로 나눴을 거라고 생각했다. 초반부의 상황 설정을 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1부가 영화 1편과 같은 분량이다. 책 1부가 끝나는 부분이 영화 1편의 마지막 부분과 같은 것이다. 그럼 후반부에서 좀 질질 끌겠다는 말인가. 내용을 아직 다 못 봤지만 두 가지로 나눌 만한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4부작으로 만들겠다는 영화 제작자들의 시도가 미심쩍다. 1편의 각색이 영 엉망이니 말이다.

 

 

영화를 보고 같은 사건을 묘사하는 원작 도서를 보니, 책을 먼저 읽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아니,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비교적 재밌게 볼 수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인 걸까? 책을 먼저 보았다면 영화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을 테니 말이다. 책에서는 영화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인물들의 행동이 모두 이해된다. 책은 캣니스의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의 표정을 보여주는 영화에서보다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법도 한데, 오히려 캣니스의 시각에서만 그려지는 책 속에서 인물의 심리가 더 잘 묘사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캣니스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 대해 왜 저러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책에서는 적어도 캣니스만큼은 어떤 마음인지 분명히 알 수 있기도 했다. 영화는 하나도 건지질 못했고, 책은 분명하게 제 몫을 챙겼다.

 

 

객관적으로 비춰지는 사건만 해도 영화가 얼마나 미흡한 묘사를 했는지 드러난다. 이런 부족이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한 인물의 이해에 심한 악영향을 미쳤다. 헤이미치와 시나의 개성을 보여주고 캣니스가 조금이나마 연대감을 갖게 되는 사건들이 죄다 사라졌고, 12번 구역에서 캣니스의 생활도 많이 생략됐다. 캣니스의 엄마가 약재를 다룰 줄 알고, 아버지가 사냥에 능했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캣니스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도움이 된다. 특히 캣니스가 지니게 되는 흉내어치 브로치와 관련된 것은 원작을 훼손한 수준이다. 영화에서는 동생 프림과의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싶었을 테지만, 아버지와 친구의 이야기도 빼버린 마당에 어설픈 경로를 추가하면서 책에서만큼 의미있는 물건으로 그려지지 못한다.

 

 

가장 불만스러웠던 건 로맨스다. 캣니스가 게일을 편하게 여기고 피타를 경계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책에서는 영화에서만큼 게일과 그리 로맨틱하지 않더라. 오히려 피타에게 캣니스가 예전부터 마음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스스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뿐. 영화에서는 마치 캣니스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벨라처럼 어장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캣니스는 생사를 걸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니 인물의 외모를 상상하는 데에 엄청난 한계를 느꼈다. 캣니스는 자신이 아주 마르고 나약한 외모처럼 묘사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렇지는 않잖아.... 게일도 좀 더 반항적이고 샤프한 느낌이어야 하고, 피타는 진짜 최고의 꽃미남이어야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영화에 대한 배신감은 여러 가지가 더 있었지만, 그만큼 책이 더 재밌게 여겨지기도 했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어쨌거나 이제 영화와의 거리감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으며 책의 뒷부분을 읽을 차례다. 1부는 영화에서 이미 봤던 사건이라 결과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이를 확인하고 원작의 맛을 느끼는 데에 집중했다면, 2부와 3부는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니 기대가 크다. 아, 두근두근!

 

 

 

그러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적어도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12번 구역이 나를 보살펴 주는 곳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프림을 대신하고 나선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지금은 내가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다.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마침내는 관중 모두가 왼손 둘째와 셋째, 넷째 손가락에 입을 맞춘 뒤 나를 향해 들어 보인다. 우리 구역의 오래된 관습으로,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제스처이다. 가끔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동작인데, 그 의미는 고맙다, 너에게 감탄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하는 동작이다. (28쪽)

 

 

헤이미치가 인터뷰하는 사람 역할을 하고, 나는 매력적으로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잘 되지 않는다. 헤이미치가 했던 말과, 내가 대답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다. 헝거 게임이라는 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왜 내가 훈련 받은 똥개마냥 뛰어다니며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 비위를 맞추려 진을 빼야 하지? 인터뷰가 길어질수록 내 분노가 표면에 드러나서, 막판에는 대답을 침 뱉듯 뱉어내는 꼴이 된다. (121쪽)

 

 

"아니. 때가 되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죽일 거라는 걸 의심하지는 않아. 싸우지 않고 죽어 버리지는 않을 거야. 그저 내가 계속 바라고 있는 것은…… 캐피톨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야. 나는 그저 헝거 게임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고,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148쪽)

 

 

몸을 돌려 개울 쪽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걱정스러웠다. 루가 죽을까 봐 걱정 되고, 루가 죽지 않고 우리 둘이 마지막까지 남을까 봐 걱정 되고, 루를 혼자 두는 것도 걱정 되고, 프림을 집에 혼자 두는 것도 걱정 된다. 아니, 프림에겐 엄마와 게일과, 배를 곯지 않게 해 주겠다는 빵집 아저씨가 있다. 하지만 루에게는 오직 나뿐이다. (215쪽)

 

 

한순간 나는 거의 바보처럼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가 혼란에 휩싸인다. 우리는 이 연애질을 연기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척 하고 있는 것뿐 아닌가? 하지만 피타의 이야기에는 좀 진짜 같은 구석이 있다. 우리 아빠와 새 이야기. 그리고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내가 등교 첫날에 노래를 불렀던 것도 사실이다. 또 그 빨간 격자무늬 드레스는…… 프림에게 물려준 다음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하도 입고 빨고 입고 빨고 해서 걸레처럼 된 그 드레스인 것 같은데. (301쪽)

헝거게임, 수잔콜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