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지만 잠자는 듯한 오후의 나른함을 가져다 주는 소설....
그것이 내가 읽은 <홀리가든>의 느낌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가 씁쓸하게 밀려와 가슴을 한 켠을 적시는 듯하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지만 과거가 주는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것에 옮매여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도 가호라는 인물을 통해서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호는 5년이 지난 후에도 한때 연인이었던 쓰쿠이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갇혀사는 인물이다. 추억과 그리움은 털어버리려고 해도 어느새 몸에서 떨어지지 않듯이 떨쳐내려 할수록 더욱 몸을 더욱 옥죄여 온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의 친구 시즈에는 과거보다는 현재의 사랑을 더욱 중요시 여긴다.
그녀는 유부남인 세리자와를 사랑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불륜, 옳지 못한 사랑이라 비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좀 더 일찍 그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는다.

“ 아무 조건 없이 그 사람을 좋아해. 내가 모르는 고장에서 태어나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살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세리자와를 좋아해, 난. 지금의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없고, 지금의 내가 아닌 나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연애라는 거, 뭐랄까 유일무이한 우연, 천문학적인 우연으로 성립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뭐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예를 들어 좀 더 일찍 만났다든가 세리자와가 독신이라든가, 그랬으면 모든 게 달라졌을 거 아냐?”  -p 267

에서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과거와 현재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선택이고 그에 대한 삶의 무게도 선택한 자의 몫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의 모습에서 더욱 눈을 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읽을수록 가호의 삶에 더욱 눈길이 간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떤 것이든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받은 상처는 더욱 오랜 상처로 남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깊은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 딛고 일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복잡한 우리의 삶처럼 일상적인 듯 보이지만 그녀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소설.... 그것이 <홀리가든>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