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의 스포일러 있음.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지 않은 것은 인간이며,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것 또한 인간이다.
 세상의 이치는 어찌보면 참으로 간단하다. 수많은 철학과 삶의 지침서들의 구구절절한 명언들을 내뱉으며 세상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다그치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사람이란 동물이 사회에서 맞닥드리는 인간관계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일 뿐이다.

 데니스 르헤인의 켄지 & 제나로 탐정시리즈의 3번째 작품인 이 <신성한 관계>는 그런 간단한 의문을 품고 첨부터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그 무엇하나를 위해 쫓고 쫓기는 육탄전을 벌인다. 바로 그것 관계가 르헤인이 말하고자 했던 신성함이었다. 이 세상에 누구도 믿을 만한 사람이 없고, 누구를 믿어서도 안되는 망가지고 타락한 사회 속에서도 단 한가지 그들에게만은 절대 신뢰라는 무기로 서로의 관계를 밀착시킨다. 이것이 매일 함께하며 티격태격하는 사이인 켄지와 제나로의 관계이다. 이 소설 속에서 그 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약간은 로맨틱한 분위기로 몰아 지금까지 나왔던 4편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지독한 어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결국 모든 시리즈를 관통해왔기 때문에 이런 모습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전 편<어둠이여, 내손을 잡아라>에서 자신의 과거 속 트라우마를 가진 채 가난과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꿋꿋하게 성장해온 패트릭 켄지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전 편에서 남편을 잃은 앤지의 슬픔을 어루만져준다. 그 슬픔은 켄지에게서도 떨어질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앤지의 남편은 그에게도 어릴적부터 알아온 친구였기에 그저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인연은 아니었다. (그것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그를 안고만 있어야했던 켄지였기에 그 고통은 앤지 못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가는 그들을 보며 이 캐릭터들을 미워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순전히 르헤인의 위트있는 문장에서 나오는 촌절살인적인 언어유희적 말장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말장난으로만 넘기기엔 너무도 뜻 깊고 심오한, 절대 버려서는 안되는 단어들의 집합체다. 다소 엉뚱하더라도 절대 캐릭터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머감각이란 정말 대단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더 대단한 건 이 르헤인이라는 작가의 작품은 생각보다 밝거나 유쾌하지만은 않고, 어떤 작가보다 어둠고 치열하며 타락과 부패의 온상으로 가득한 사회의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그런 배경 위에 놓인 켄지와 제나로는 타락한 사회를 배척하지 않고 그 속에서 유영하듯 꿈틀거리며 살아가면서도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단 몇 사람. 자신들을 달래고 위로하며 세상의 추악한 악과 맞서기에 그들의 캐릭터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확실히 다른 시리즈보다 가볍다. 트라우마로 인한 가혹한 상처보다는 사이코패스의 유동적인 활동에 맞춰 정확한 탐정 시리즈처럼 문제가 주어지고 그 문제를 풀고, 그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면 약간의 로맨스적인 분위기까지 곁들여진 한편의 헐리우드 영화같은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만큼 다른 시리즈들보다 날렵하게 빠르다. 기본적인 탐정시리즈의 재미를 가지고 있으니, 그 점에선 확실하다. 다만 르헤인 특유의 강렬한 여운이나 얽히고 섥힌 심각한 사회적 문제와 인간적 트라우마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르헤인이지 않는가. 중간중간 콕콕 찌르는 듯한 부패한 사회의 통찰력은 잃지 않았다. 더욱이 트라우마라는 인간의 어둠을 걷어내고 다소 밝은 인간관계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르헤인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이면서도 또 다른 느낌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렇게해서 현재 출간 된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모두 접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면서도 아쉽다. 켄지 & 제나로 6편이 출시된다는 소식도 있고, 데니스 르헤인의 작품을 기다리는 한 사람으로써, 그가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지독한 아픔을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마음 껏 후벼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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