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왜 이 책의 배경을 50년대 구소련시대로 택했을까? 

 보통 일반 스릴러가 접하는 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와 그 안에 부조리, 그리고 살인사건 등을 자주 다룬다는 걸 보게 된다. 가장 무난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배경지식의 전달도 평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배경은 왜 구소련일까? 그 사실은 책을 펴는 순간 퍼뜩 그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해간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이나 독일군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희귀한 배경은 아니다. 특이 독일의 파시스트를 통해 공산주의와 나치정권에 대한 무수한 소설과 영화들을 접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대체로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간혹 인류 문제에 대한 고발과 정치적인 문제 등을 통해 예술영화로 치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풍기는 분위도 또한 무시못할 무거움을 지녔다. 
 이 소설에 가장 특이한 점이 바로 그 독특한 배경적 무거움에 있다.

 국가는 권력이고, 국가를 배반하는 사람은 죄인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레오는 국가정보원 소속이면서, 상부의 지시를 받아 일명 첩자를 잡는 고도로 훈련된 MGB의 고급요원이다. 하지만, 국가적 체제속에 자신의 어떤 이유도 없이 단지 첩자라는 상부의 정보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왔다. 아니, 국가에서 첩자라면 그는 죄인이었다. 그것이 법이고, 그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였다. 그러나 레오의 신념은 브로츠키라는 인물을 잡아드리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말 무고한 사람을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있구나...  그리고 그는 이제 아내를 위해 국가의 믿음을 져버려한다. 

 믿음을 잃은 것이 바로 죄다. 

 1930년대 초반에 벌이지는 두 아이의 사건 이 후, 책은 중반까지 레오라는 인물과 구소련의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 시대의 체제에 대한 문제와 인간의 기본권리에 대한 상충들이 맞물려 레오라는 인물의 내면 깊숙한 인뇌와 사상적 고뇌에서 갈팡질팡 거린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배경은 다소 무거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첫 만남에 지레 겁부터 먹을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작가의 시대적 설명이 섬세하고 자세하게 나열되어져 있고,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왜 그런체제에 적응하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굴복하는지를, 또 그 체제가 갖는 장점과 단점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다. 이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철저한 시대적 조사와 고증을 통해 마치 그 인물과 같은 공간에 놓여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능력. 이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책에 빠져들고 그 인물에 동화되어 간다. 이 배경지식의 엄습은 방대함에 놀라고, 치밀함에 혀를 내두른다. 그 상황속에 소설 속 주인공들의 배경적인 심리묘사와 그에 따르는 내면심리도 탁월하게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다소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미친듯이 달려나가는 그런 스릴러 소설이 아니다. 첫 시퀸스의 강렬함은 자연스러운 인물소개와 배경설명 등으로 인해 저만치 뒤로 물러난다. 그렇다고 절대 지루할 수 없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그 안에 모든 이야기가 접목되어 있으며, 그 지적인 흥미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스릴러 소설의 주는 특별하고 독특한 충격인 것이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레오의 신념의 변화로 인해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일말의 사건들은 다시 한 아이의 처참한 시체로부터 제 2부의 서막에 불을 당긴다. 이제부터는 책 표지에 놓인 기차길을 따라 국가도 경찰도 잡지 않는 미지의 살인마를 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모든 걸 잃은 도망자 레오가 그 선봉에 서 있다. 그렇게 석탄을 머금은 기차는 마지막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이 소설은 절대 가볍게 볼만한 소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겁게만 볼만한 소설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렴풋이 흘려들었던 말들과 지식들이 넘쳐나고, 이야기가 가지는 힘 자체가 구구절절 뼈저리게 와닿는다. 국가적 대의를 위해 따르는 레오의 행동과 변화, 그리고 타락, 그의 권력을 따라 두려움을 간직한 채 살아온 아내 라이사, 그리고 아무 죄 없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44명의 아이들. 그 외 더 많은 희생자들을 포함한 모든 영혼들의 심리가 이 책속에 빼곡히 담겨 있다. 그만큼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막막하게 만들정도로 그 이야기가 풍성하다. 많은 얘기를 풀어놓고 싶지만, 그 많은 생각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기에 그냥 직접 읽어보라는게 현명한 판단일 듯 싶다.

 남의 얘기가 아무리 달콤해도 자신에겐 독이 될 수 있다. 
 허나, 대다수에게 달콤한 건 99%에게 달콤하게 되어있다. 단지 1%만 아니라면...

품절, 노블마인, 차일드44, 박산호, 톰롭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