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 
 "영혼을 살해하는 범죄를 일컫는 편리한 말이죠."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인종과 수많은 성격, 수많은 남녀, 수많은 부부,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모든 것들이 이 땅에 자신의 한 부분을 붙이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수많은 것들 중에 비슷한 것은 거의 없으며, 그 중 같은 것이라 일컫는 대부분의 복제품에도 털한올이 몇미리라도 길던가 짧던가 하는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전혀 다른 부류가 만나게 된다면 그 차이는 어떻게 될까? 생각만해도 확연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차이가 있게 될 것이다.

 왜 이렇게 쓸데없이 차이를 들먹였냐하면, 우리가 사는 가장 작은 울타리의 범주 안에서 시작되는 인간관계를 꺼내보고자 함이었다. 그 주제가 이 책을 아우르는 핵심. 바로 가족이라는 것이다. 개인에서 시작한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은... 각기 다른 형제, 남매, 자매, 부모 등이 모여 간단히 이렇게 이룰 수 있는 가정으로 꾸며진다. 그런 가정을 3단 뛰기에 비유해 볼 때 1단은 우리가 제일 먼저 태어나 세상을 배우는 첫 걸음의 배경이며, 2단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고, 3단은 우리를 응원해주는 무한함 애정이다. 이런 3단 뛰기를 거치게 되면 우리는 이제 1차시기에 첫 도약을 하게 되고, 새로운 사회라는 곳에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무엇가를 맞보게 되는 게 정해진 이치다. 그러면서 이런 비슷한 과정을 거쳐 2차, 3차... 그리고 몇 차가 될지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도약의 기회를 주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무한한 애정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우리는 이런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을 거쳐 사회에 진출하고, 결혼을 하고,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지 못한 가정은 시작의 첫 단계, 첫 걸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세상을 배우는 1단의 첫 배경부터 폭력에 물들어 있고, 정신적인 황폐로 시작한다면 그들은 1차 도약조차 시도해보지 못하고, 기권하거나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허송세월을 보내다 시간 초과로 인한 실격처리가 되고 말 것이다.

 소설 <무덤의 침묵>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가정의 붕괴가 초래하는 최악의 결과들을 말이다. 시작이 잘못되면 그것을 바로 잡기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거나 전혀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잘못 꿰어진 첫 단추는 무시무시하고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할 것도 가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참으로 암울하다. 역설적으로 보면 그런 모습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면으로 따지고 들자면, 최악의 가정이자 최악의 배경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어디서나 어느곳에나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통감을 해야할 것이고, 되도록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최소한의 우리라도 이것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소설로 돌아와서 살짝 집어보자면, 우선 가장 좋았던 부분은 섬세한 묘사와 굴곡진 삶을 가진 등장인물들의 무게감이었다. 가정폭력에 항시 노출되어 있던 과거의 가족 구성원을 비롯한 현재의 주조연급 캐릭터들의 내적심리변화가 좋았고, 그 중에서 특히 주인공 에를렌두르의 심경변화는 소설의 중심 캐릭터를 완성하는데 탁월함을 보여줬다. 이 소설자체도 그렇지만,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에서 더 깊숙히 파고들어 인간내면에 꽁꽁 감추어두었던 심리들을 파헤치는 것 같다는 점에서, 예를 들어 에를렌두르가 어릴적 버리고 나온 딸이 성장하고 임신까지 했지만 마약중독에 빠져 뇌사상태에 이른 후, 찾아가 자신의 심경을 어색하게 털어놓는 부분이나 20년 가까이 단 한번도 보지 않았던 아내를 피해다니는 모습 같은 것이, 이 복잡한 캐릭터의 심경을 잘 표현해주었다는 생각이다.  

 다만, 재미도 있었고, 무게감도 있었던 소설이지만, 그런 점에서 좀 아쉬위 감도 없지않아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단점은 좀 지루하다는 것이었는데. 경악스런 뼈의 등장과 함께 강렬한 초반부를 시작으로 치고 달려나갈 듯 했지만, 갑자기 수사에서 정체되어버린 이야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특히 수사를 펼치는 과정이 사건을 밝혀낸다기 보다는 진전없는 그저 사람찾기 정도밖에 되지 못했었고, 그나마 지루함을 달래준 과거 이야기는 가정폭력을 다루기는 했지만 식상함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읽기가 더욱 더뎌졌다. 마치 소설에서 고고학자가 유골을 캐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의 답답함을 독자로써 직접 느낄 정도였으니 그 지루함은 짧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차곡차곡 쌓아놨던 소재들이 막판에 몰려서 터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박차를 가하자 어느새 그 끝은 금방이었다. 묵직한 여운 또한 가득 동반한 채 마지막의 간절함은 그 침묵이 얼마나 가슴 아파했어야 했는지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근데, 영혼을 살해하는 사람에게는 누가 형을 선고하죠?"

아날두르인드리다손, 무덤의침묵, 이미정, 영림카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