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통치이념인 유교는 조선을 토대를 세운 기초임과 동시에 조선을 망하게 한 가장 큰 원인중 하나로 이야기되어진다.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할 때, 절대자인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는 유교를 국가이념의 기초토대로서 활용하였고 수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경직된 유교의 세세한 예법논쟁으로 국력을 소비함으로 인해 결국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유교는 반드시 버려야만할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게 되었으며, 20세기 끝나는 시점까지 이런 분위기는 계속 되어왔고 최근에서야 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학은 학문이지만 그 추구하는 이상은 대단히 높고 넓다. 일상생활에서 시작하여 인생과 우주와 자연에 대한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이해의 세계에까지 도달하고자 한다. 유학은 인간이 살면서 당면하는 모든 문제를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풀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학문이다. 어떤 영역도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있는 절대자에 대한 신앙의 영역으로 넘기려고 하지 않는다." - P. 7.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조선시대 유학의 큰 두갈래인 주리론과 주기론을 대표하는 학자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사상을 비교, 연구하는 서적들이 부족함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35세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두 분이 서로 주고받은 시와 편지 등의 글을 통해서 두분의 사상을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저술한 책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은 두분이 주고 받은 시를, 2장은 율곡이 질문하고 퇴계가 답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사상을 논한 편지를, 3장은 퇴계의 사망 이후 율곡이 퇴계를 위해 지은 글을 풀어서 이야기한다.

전체적인 내용들이 쉽게 읽혀지거나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 아니다.

먼저 중심 단어부터가 현대인들이 쉽게 접하는 용어가 아니기에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나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저자가 아무리 쉽게 풀어서 적었다 하더라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듯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과학에 의한 이해는 객관적 인식의 영역에 머물지만 유학의 이해는 주체에 기초한 인식으로 인간의 인식을 넘어 자연의 창조에 참여하는 참여적 인식과 실천이다. 퇴계의 도학적 경향은 유학의 참여적 성격이 극대화된 양태라면 율곡의 자연 이해는 과학적 자연인식의 단초를 여는 듯한 성격이 강함을 느낀다." - P. 316.

 

고등학교때 배운 주기론과 주리론은 성리학을 이해하는 양 극단에 위치한다고 배웠었다.

이는 똑같지는 않지만 서양철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와도 비교되고,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수행방식과도 비교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유심론과 유물론, 관념론과 경험론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봉우리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달라도 결국 목표가 산꼭대기이기에,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양극단의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로 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두분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서로를 질책하고 비판하면서 서로의 사상을 치열하게 논쟁하지 않았을까 믿어본다.

 

"퇴계가 하늘을 지향한다면 율곡은 땅을 지향하며, 퇴계가 이상을 지향한다면 율곡은 현실을 지향한다. 퇴계가 인간의 내면성을 중시한다면 율곡은 외적인 성취를 중시한다. 하늘과 땅, 이상과 현실, 내면과 외면은 서로 멀리 떨어질 것 같지만 인간의 삶에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된다." - P. 5.

 

20세기를 넘어서면서까지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철학, 사상을 도외시하였다고 본다.

서양의 것만이 성공을 담보하는 좋은 것으로 여겼고, 우리의 삶속에서 오랜시간 함께 했던 우리의 사상들은 옛 것으로, 낡은 것으로만 생각하고 무시하였지 않았는가 싶다.

하지만 서양의 기계론적, 과학적 세계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점점 깨달아가면서 동양의 사상에 눈을 돌리는 이때, 우리도 다시 우리가 버려놨었던 우리의 사상에 주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1세기가 직면한 개인적인 도덕의 문제, 자연환경의 파괴문제, 세계적인 불균형 문제는 서양의 것만으로도, 동양의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다고 본다.

두가지의 큰 사상이 융합되어야만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유학은 자연을 하늘의 사업으로 이해하며 과학은 자연을 물질적 전재로 이해한다. 이 둘은 만나 하나로 결합되어야만 자연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이루게 된다고 생각한다.... 도덕을 통하여 자연의 영원한 덕성을 이해하게 되고 과학을 통하여 자연의 무궁한 사업을 이해하게 된다.... 퇴계는 도학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주고, 도학적 사유가 팽배한 시대 가운데서 율곡은 과학적 사유의 싹을 틔우기 위하여 분투하였다." - P. 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