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 정신은 깊고 넓다.

게르만 후예들은 고기(경제력)가 아니라

고기를 잡는 지혜(문화유산)를 자랑한다.

여기 게르만의 후예, 동갑내기 언론인이 함께 쓴 책도 그런 문화적 소산이다.

[글로벌 카운트다운 : 정의인가 자멸인가 - 세계화의 미래(

Der globale Countdown : Gerechtigkeit oder Selbstzerstörung

- Die Zukunft der Globalisierung)] , 2008.

이 걸작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이 선정한
 ‘올해의 정치학 도서상’ 수상작이다.

이 책을 쓴 하랄트 슈만은 예전에도 ‘브루노 크라이스키 저술상’을 받은 작가다. 

1998년에 그는 [세계화의 덫 :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

 Die Globalisierungsfalle: Der Angriff auf Demokratie und Wohlstand)]을

한스-페터 마르틴과 머리를 맞대고 발표한 바 있다.

흔히 말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라고.
그러나 [세계화의 덫] & [글로벌 카운트다운]의 명성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하랄트 슈만의 책들은 포괄적인 탐구, 명민한 분석, 폭넓은 헤아림이 눈부시다.
그가 마련한 성찬은 철철 넘치도록 먹을 게 많은 잔치 마당이다. 
비록 흥에 겨운 잔치가 아니라 씁쓸한 잔치라서 못내 아쉽지만.

하랄트 슈만이 보는 세계화란 ‘범지구적인 경쟁의 격화’를 뜻한다.

세계경제의 통합이 끼리끼리 싸우는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세계화가 노린 불평등 구조는 ‘20 대 80’이란 섬뜩한 논리인데,

곧 생산성이 높은 현장에선 20% 노동력만 필요하며,

나머지 80% 노동력은 쓸모없이 나뒹군다는 것이다.

그런 탓에 실업률과 고용불안은 나날이 늘어난다.

엎친 데 덮친 꼴이다. 

이것이 세계화가 낳은 초라한 성적표이다.

금융시장의 신자유주의가 이 어수선한 틈을 아니 노리겠는가.

저 사악한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조정력을 흩트리고, 정치를 얼어붙게 만든다.

마침내 금융시장의 철저한 독재가 자행됨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세계화 과정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뿌리마저 뽑아내는 짓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화는 자신을 파괴하는 덫’인 셈이다.

하랄트 슈만은 10년 동안 다시 펜 끝을 갈고 갈은 뒤,

知友 크리스티아네 그레페와 더불어 세계화 깡패들과 한판 승부를 겨룰 참이다.

[글로벌 카운트다운]은 슈만과 그레페가 힘껏 던진 승부수이다.

자, 과연 누가 한 방에 나가떨어질 것인가? 
이 치열하고도 절박한 싸움을 지켜보는 건 정말 숨 막히는 일이다. 

이 책은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다.

하나도 버릴 게 없는 금송아지다.

지은이들은 무려 100여 년이 넘는 세계화 과정을 쭉 살피고 있다.

19세기 후반에서 21세기까지 도도한 세계화의 물결이 멈춘 적은 없었다.

다만 또다시 불거진 경제 대공황 탓에 ‘세계화’란 말이 오르내리는 것일 뿐.

지은이들의 전공을 잠깐 보자.

슈만은 사회학과 조경학을, 그레페는 정치학을 공부했다.

우습게도 경제학을 전공한 이가 없는 바람에 이 책의 구성은 더 정교해졌다.

지은이들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난 것일까?

그야말로 이 책의 별미는 다음 두 부분이다 : 
제5장(온실에서 벌어지는 자원전쟁) & 제6장(에코토피아를 향하여) 

하랄트 슈만이 전공한 조경학(造景學)은 말 그대로 
경치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 그것에 관한 학문이다.
곧 세상을 바르게 다듬는 건축이요 기술이다.
돈독이 오른 독점자본주의는 끝내 지구 환경마저 손익계산서에 포함시킨다.
슈만은 이를 적확하게 꼬집고, 바로잡고자 애쓴다.
[기후변화]를 쓴 크리스티아네 그레페 역시 환경론자임에 틀림없다.
일찌감치 생태학(Ökologie)을 주요 논제로 삼은 독일인다운 자세다.

지은이들은 결코 어설프게 양다리(신자유주의 & 진보주의)를 걸치지 않는다.
그들은 진중하게 고르고, 단호하게 결단하며,
더 나아가 풀어야 할 과제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한계점이 분명히 드러난 대안(비정부단체의 활약)일지라도 귀 담아 들을 만하다.
비판 의식이 살아 숨 쉬는 글처럼 시원하고 반가운 게 또 있을까?
[글로벌 카운트다운]은 세계화 깡패들을 때려눕힐 만한 힘센 주먹을 갖고 있다.

그럼 지은이들이 힘차게 걸어가는 길은?
지은이들은 세계화의 긍정과 부정, 그 동전의 양면을 다 들여다보고,
치우침 없는 눈길로써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제멋대로 날뛰는 세계화가 아니라 알맞게 조정 가능한 세계화를,
물질 만능의 세계화가 아니라 인간화된 세계화를 요청하는 길, 바로 그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인간(Homo Oeconomicus)’이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Homo Humanus)’,  곧 총체적인 인간을 지향하는 것이다.

환경(Umwelt)이 무너진 세상(Welt),
과연 그 속에서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벌써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시간이 촉박하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경제적 불평등을 이겨내고 참살이 세상을 일구는 그대여,
아, 그대들에게 평화 있으라(pax  vobiscum)!


P.S.
* 촉박한 시간을 직접 확인하시길  ---
[Das Ende der Geduld : 
 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s <Die Zeir drängt> in der Diskussion]
 Herausgegeben von Erhard Eppler, Carl Hanser Verlag, 1987

[인내의 한계 : 논쟁 중에 있는 바이젝커의 책 <시간이 촉박하다>]
  에르하르트 에플러 엮음, 대한기독교서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