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 움베르토 에코는

[나는 <장미의 이름>을 이렇게 썼다]에서 말하길,

“내가 창조한 소설 세계의 가장 중요한 한 요소는 역사이다.”라고 하였다.

에코 뒤를 이을 만한 작가답게 줄리오 레오니 역시

중세의 한복판으로 우릴 이끌어 간다.

단테 시리즈의 종착역인 [단테의 비밀의 집회]로 말이다.

흥미롭게 이 책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같은 14세기가 배경인데,

이야기는 화려한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된다.

이미 유럽은 13세기에서 14세기로 넘어갈 때 몰락의 징후를 내비친다.

기독교 교의(doctrina Christina)는 성서(sacra pagina)에 토대를 두고,

성서는 모든 중세 문화의 기초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단테는 교황청의 불호령에 쫓겨서 떠돌이 신세로 한평생 살았는데,

소설 속에선 온갖 권력과 맞대결하는 180도 다른 얼굴로 나오고 있다.

단테가 [神曲(La Divina Commedia)]을 토스카나 방언으로 썼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겠지만, 정작 단테는 소설처럼 살진 못했다.

에코와 달리 줄리오 레오니는 대놓고 실존 인물 단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줄리오 레오니는 넓은 안목으로 촘촘한 구성미를 자랑하며,

덧씌운 이미지와 역사적인 기록 사이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다.

놀라운 상상력은 수수께끼 여인을 통해 또 다른 실존 인물을 불러들인다.

다름 아닌 로마의 詩聖,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다. 

14세기 기독교 세계의 어수선함을 틈을 비집고 작가의 상상력이 웃고 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유명한 요한 하위징하(Johan Huizinga)는,

중세의 종교 생활 가운데 사제 계급에 대한 공공연한 조롱과 멸시가

가장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줄리오 레오니가 매우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파피루스 원본을 꺼내들고,

적나라한 관능의 비밀 모임을 드러내는 것 따위가 다 이런 맥락에서다. 

상상력의 극치에 다다른 줄리오 레오니는 급기야 여자 교황까지 들먹인다.

물론 중세 때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ddalena) 숭배 의식이

유럽 곳곳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릴 때와 승천하실 때 자리를 지켰던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는 로마의 초대 교황 베드로를 뛰어넘는 존경을 받았었는데,

차츰 역사적 은폐와 왜곡 탓에 결국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성인이다.

여자 교황에 대한 것도 소설 속 상상력이 키운 모델이겠지만,

혹시 우리가 몰랐던 지난날의 진실에 대한 반격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관능적인 육체를 탐하는 비밀 제의는 고대 밀의 종교에선 흔한 것이고, 

수수께끼 여인에 대한 이미지는 “마녀 사냥”으로 우릴 유혹하는 것 같다. 

이렇듯 시대를 넘나드는 작가의 치밀함이 책읽기의 속도를 내게 만든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빈치 코드]의 허무맹랑함을 다 잊고,

에코를 낳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게다.

프랑스의 사학자 쟈크 르 고프(Jacques Le Goff)는

중세의 상징어를 탐욕과 교만에서 찾았으며,

중세 마지막 300년을 파벌 싸움으로 얼룩졌던 혼돈기로 파악하였다. 
(참조 : [서양 중세 문명(La Civilisation de l’Occident medieval)]


살인이 부른 핏빛 구름, 육체를 향한 달콤한 중독, 갈팡질팡하는 지식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우리의 단테가 당당하게 서 있다.
그가 말하고픈 비밀 집회는 우리한테 무엇을 고발하는 걸까?

과연 줄리오 레오니가 움베르토 에코가 불러일으킨 반향에 미칠 수 있을까?
글쎄, 내 결론은 부정적이다.
에코의 글쓰기에 비해 레오니의 그것이 현저하게 함량미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자가 쓴 소설과 작가가 쓴 소설이란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
레오니는 에코보다 더 짙은 소설적 풍경을 선사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줄리오 레오니의 책을 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레오니가 들고 나온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와
종잡을 수 없는 상상력의 생기발랄함 때문이다. 

중세사의 영원한 고전, J. 하위징하가 쓴 [중세의 가을(Le Declin du Moyen Age)] 
제1장 <삶의 쓰라림>을 보면, [단테의 비밀의 집회]를 읽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 삶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지금과 현저히 다른 모습과 윤곽을 띠고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말한다.

소설로 들어간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산을 오르자면 호흡법과 행보를 익혀야 한다고.

중세를 무대로 삼은 소설 읽기는 그리 녹록치 않은 여정이다.

글 사이에 숨은 비유와 상징을 캐내야 하고,

역사적 배경 속 인물과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수조건이다. 

[단테의 비밀의 집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뒤돌아선다.

중세는 오늘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