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체계는 승인된 가치에 토대를 세우고,

그러한 가치는 정직과 신뢰에 바탕을 둔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이미 그러한 갈등과 혼란은 예견된 일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가늠할 수 있었던 재앙이라고 하지만,

최근에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

곧 금융의 모가지를 마구 옥죄는 사태의 심각성이 심상치 않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미국 덕분에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다시 말해 미국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건 너무 위태로운 도박이다.

저소득층을 상대로 자행되는 주택담보 대출은 한 마디로 범죄다.

타락한 자본주의의 끝을 보는 것과 같다.

세계 경제 중심축인 미국의 얼굴,

그것은 타락한 자본주의 얼굴이기도 하다.

최후의 대출자이자 소비자인 미국은 더 이상 형님 노릇하기는 틀린 모양이다.

금융 위기 속에서 알맞은 균형을 이루기 위해 힘의 분산이 절실한데,

마크 울프는 신흥 경제국한테 슬기로운 경제 논리를 강하게 요청한다.

외국 자본을 금융 체계에 받아들이는 세계화,

그것은 언제나 환율 위기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위기가 더해질수록 금융 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들이 떠안아야 할 버거운 짐으로 남는다. 

힘에 부치는 민중의 어깨를 그 누가 토닥거릴 것인가?

저 아틀라스(Atlas)의 어깨는 제 몸 하나 떠받들지 못하는 가련한 신세 아닌가.

지금 [금융공황의 시대 : 금융세계화 그 불안한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  

누구도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이즈음,

<파이낸셜 타임스>의 이름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나섰다.

경제 공황 탓으로 우리들의 텅 빈 머릿속은 어지럽다.

그런 까닭에 그가 신용을 잃고 휘청거리는 경제 질서 속으로

날카로운 메스(mes)를 들이댄 것은 반가운 일이다.      

마틴 울프는 금융을 “시장경제의 두뇌”라고 말하는데,

마침내 지난 30여 년 동안 뇌경색에 빠진 금융시장을 꾸준히 지켜봤던

그가 멋진 진단서를 내놓았다.

그것은 책상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현장 속에서 몸소 느낀 결과물이다 :

[Why Globalization Works], 2005

[Fixing Global Finance (Forum on Constructive Capitalism)], 2008 

 

마크 울프의 섬뜩한 메스는 마치 전방위외교를 하는 듯

온 세상 곳곳의 경제를 들여다보며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종종 너무 낙관적인 전망과 편견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는 경제의 맥을 짚는 울프의 손길은 따스하다.  

학자가 아닌 칼럼니스트의 글답게 마크 울프의 책은 쉽게 읽힌다.

물론 경제서치고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이 아주 쉽다는 게 아니다.   

도표와 일람표를 제시하며 논증의 무게를 조정한 점도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다. 

책 몇 권이 들이닥친 금융 위기를 이겨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안으로 제시된 전망(vision)이 순조롭게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앞날을 향해 나아갈 때

마틴 울프의 외침이 든든한 지팡이 노릇을 하지 않을까 싶다.

모쪼록 금융세계화가 더불어 잘 사는 길로 들어서기를 바란다.

비록 봄날에 꾸는 덧없는 환상일지라도. 

독점자본주의는 언제나 불안한 시한폭탄 아닌가. 

마틴 울프의 책이 뇌관을 없애는 데 작은 도움을 주기를.

21세기 금융 위기가 제 발로 걸어간 길,

그 깊고도 깊은 절망과 불안의 골짜기가 더 이상 우리 눈을 흐리게 하지 않기를.

P.S.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 1973>는

한 위대한 시네아스트의 말은 결코 괜한 투정이 아니었다.

난데없이 기구한 운명의 항해에서 좌초한 감독,

파스빈더(Reiner Werner Fassbinder)를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