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Wo liegen deine größten Gefahren? - Im Mitleiden.

그대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 동정(同情) 안에.

                                                274

Was ist dir das Menschlichste? - Jemandem Scham ersparen.

그대에게 가장 사람다운 것은 무엇인가? - 저마다의 수치(羞恥)를 없애는 것.  

                                       275

Was ist das Siegel der erreichten Freiheit? -

Sich nicht mehr vor sich selber schämen.

얻어 낸 자유가 봉인한 것은 무엇인가? -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기. 

-   F. W. Nietzsche :

    [KSA 3 : Die Fröhliche Wissenschaft] , Drittes Buch, S.519 

                                                       ***

남을 돕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런데 도움을 받는 이 또한 아름다울까?

가난한 이는 언제나 불행한가?

때론 쓸데없는 선입견이 더 초라하다.

모든 자선이 떳떳한 것일까?

더러운 손길은 이제 그만!

버지니아 대학의 푸른 하늘 아래서 공부한 재클린은

어느새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고개에 이르렀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재클린의 이 어릴 적 꿈이 정녕 하늘의 뜻일까?

늘 모험과 참된 변화 속에서 마음의 힘을 키운 재클린.

수녀 대신에 사업가로 변신한 그녀는 여전히 순수하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헌신은 수녀의 마음 바로 그것이다.

책의 부제는 “이어진 세상 속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다리 놓기(

Bridging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in an Interconnected World)”다.

재클린이 물질을 통한 든든한 다리 놓기에 나선다.

은행원으로서 돈이 돌아가는 이치를 제대로 파악한 그녀답다.

브라질의 달동네, 파벨라(Favela)에서 보고 들은 것 때문일까?

그녀에게 가난 극복에 대한 믿음을 준 곳이 바로 브라질이다.

그런데 정작 재클린의 발걸음이 다다른 데는 아프리카였다.

그 가운데서 르완다는 아주 특별하다.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를 떠난 문제의 ‘파랑스웨터’,

그 옷을 머나먼 르완다의 키갈리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마치 멜로드라마의 진부한 표현(cliche)처럼 보이는 
이 운명적인 만남은 재클린의 삶을 와락 껴안는다.  

아니나 다를까.

솔직히 말하면, 몇몇 구석은 전형적인 성공 사례의 틀이다.

예를 들면, 탄탄대로를 마다하고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

어려운 이들의 정황보다 더 구체적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 따위다.

서양인들의 자선 문화가 종교에서 비롯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라 오랜 전통에 따른 것이다.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에서 이민한 아메리칸 드림 세대의 후손인 재클린.

가톨릭의 정신은 그녀를 이끈 힘이다.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삶을 살아야 한다!’,

라는 평등에 관한 원칙 역시 그와 같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재클린은 비영리 기구(Acuman Fund)를 통한 재활 사업을 꾀한다 :

가난 퇴치에 힘쓰는 사업가들에게 투자하는 것(이윤 창출)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자립(본래의 뜻)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식이다.

1960년대에 태어난 재클린은 온갖 어려움(가난, 인종 갈등)을

나름대로 맛본 세대에 속하는데, 어릴 때부터 그녀는

나, 너, 그리고 우리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3번씩이나 복무했던 군인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재클린은 독립심, 극기심, 모험심이 남다르다. 

게다가 사업 수완도 뛰어나고, 여장부다운 기백도 살아 있다.

재클린의 거침없는 추진력은 종종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

브라질 동료가 그녀에게 던진 한 마디-브라질인은 살기 위해 일하지만,

미국인은 일하기 위해 산다-는 의미심장하다.

춤과 노래 없이 못사는 브라질인에게 부자 나라는 일중독자임에 틀림없다.

문화 충돌은 문화 충격을 낳기 마련이다.

재클린이 아프리카에서 겪은 것은 충격 그 자체였으나, 그녀는 끄떡없었다.

여하튼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재클린의 결단은 단호하고 거침없다. 
때론 이런 행동이 좀 지나친 것은 아닐까, 라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그렇지만 저 굳건한 신념이 없었던들 
아프리카 최초의 소액대출은행, <두테림베레>가 세상 빛을 보기나 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예까지 온 재클린과 <두테림베레>에게 박수를 보낸다.
르완다 토박이말로 ‘열정을 갖고 나아가자’는 빈민은행 <두테림베레>가

아프리카의 희망의 빛이자 생명의 원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파릇파릇한 꿈이 이내 사라지는 신기루가 아니라면 가능할 터이다. 

자, 이쯤에서 돌고 도는 물음을 던질까 한다.

과연 서양인의 자선 사업은 정당한가?

갖은 속셈이 마음 다한 도움마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끔 한다.

토착 문화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것과

남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드는 것,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있는 걸까? 
서양의 정복사는 더러 '경계선 흐리기' 또는 '경계선 지우기' 아니었던가.

순진한 선교 정책은 더 순수한 원주민의 삶을 어지럽히고,

빵 한 조각과 스프 한 그릇은 원주민의 배를 불리지 않고,
오히려 저들의 숨통을 옥죄고 발에 차꼬를 채우지 않았는가. 

치사한 도움은 치밀하고 사악하다.

제국주의의 지나친 간섭은 발전은커녕 벌집을 들쑤신 형국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재앙의 근원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아프리카의 지도를 제멋대로 그린 제국주의의 손길 아닌가.

1994년 르완다의 잔인한 4월을 기억하시나요?

석 달 동안 르완다의 강산을 휩쓴 내전은 8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지난 2005년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때 
르완다 내전에 관한 훌륭한 작품 하나가 선을 보였다 : 
<악마와 악수하기 : 로미오 딜레어르의 여행(

Shake Hands with the Devils : The Journey of Romeo Dallaire)>.

내전 뒤 르완다에 주둔한 UN평화유지군을 통솔했던 캐나다 육군 중장,

로미오 딜레어르가 내전 10주기 집회에 참석하게 되는데,
카메라가 장군의 마음을 가로지르며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영상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2000년에 이미 <르완다, 희망을 찾아서>를
발표한 바 있는 캐나다 출신의 피터 레이몬트(Peter Raymont)다. 

르완다는 재클린에게 매우 중요한 땅이다.

마음뿐만 아니라 물질을 나누는 자선의 실험 무대가 바로 르완다이기 때문.

물론 여전히 실험 중이다.

지금 우리는 그 실험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오로지 잘 돌아간다는 매체의 소식만 들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반쪽의 진실만 우리 곁에 있다.

정녕 르완다 민중들의 기쁨과 슬픔은 무엇일까? 

재클린을 비롯한 여러 자선 사업가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돌아선다.

임시방편의 도움보다 더 근본적인 개선책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은 채로. 

언제나 큰소리로 웃는 재클린의 사진을 흘끗 쳐다본다.  

세상의 부조리(전쟁, 폭력, 억압)에 맞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얼굴을,

우리 시대 진정한 아름다움과 사랑의 女神을.  

 

 

 P.S.

빼어난 문장가는 믿음직한 번역가로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데,

이번 김훈의 이름값이 이에 걸맞은 경우다.

각 장마다 곁들인 사진이 감동의 깊이를 더하며,

재빠르게 출간한 <이른아침>의 부지런함이 고맙다.

* 조금 더 구체적인 가난한 세상 지도를 위해서 :

 

1. 이효재, 허석렬 엮음, [제3세계의 도시화와 빈곤], 한길사, 1990 
   : 특히 ‘4장 - 여성과 노동’에 주목하시길.

     뒤늦게나마 재클린이 여성 문제로 눈길을 돌려서 다행이다. 

2. 루돌프 슈트람, [왜 그다지도 가난한가(Warum Sie so arm sind) -

   제3세계 저개발 구조에 관한 통계적 도표와 해설] , 분도출판사, 1987

   : 매우 철저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이 번득이는 책.

  

3. [To break the chains of oppression :

    Results of an ecumenical study process on domination and dependence]

    Commission on the Churches’ Participation in Development (CCPD)

    World Council of Churches, Geneva, 1975

    : 세계교회협의회가 내놓은 신랄한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