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에 대한 탐구는 모름지기 인간으로서 마다할 수 없는 도리다.

이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was ist der Mensch),

곧 인간학(Anthropologie)의 근본 물음으로 이어진다.

칸트 사상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인간은 무엇을 인식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라는 끈질긴 물음 앞에. 

예나 지금이나 ‘존재 물음(Seinsfrage)’은 그 됨됨이만 달라졌을 뿐이지

여전히 사유의 앞머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인간은 몸(그리스어, soma)과 영혼(그리스어, psyche)으로 된 존재일까?

존재론(Ontologie)의 역사는 일원론과 이원론의 치열한 싸움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라틴어, anima)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곧 영원한 진리의 빛으로서 정신(라틴어, animus)을 더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과 이성의 빛으로서 정신을 얘기했다.

근대의 데카르트에 이르러선 존재/정신, 물질/사유, 주관/객관이

이분법으로 나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헤겔은 역사적/변증법적으로 해석된 절대자로서 정신을 주장했지만,

헤겔 이후 정신을 앞세우는 일은 점점 시들해지고 말았다.

마음공부가 잔잔한 물결처럼 삶의 빈 구석을 파고드는 이즈음,

4월 들어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책을 두 권이나 읽게 됐다 :

[리얼리티 트랜서핑2] &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되지?].

출판사 <정신세계사>, 그 이름만 봐도 책의 색깔이 한눈에 들어온다.

[리얼리티 트랜서핑2]은 러시아 물리학자(바딤 젤란드)가 쓴 책이고,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되지?]는 우리 한의사가 쓴 책이다.

세속을 떠난 수행자들이 아닌 저들이 자기 계발서를 내놓은 게 흥미롭다.

도(道)를 닦는 것은 길을 새로이 여는 게 아닌가.

길이 산골에만 있을 리 없고, 수행자가 골방에만 처박혀 있을 까닭도 없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되지?]의 지은이는

자신의 지식을(老莊思想, 韓醫學) 살려 삶의 치유법을 내놓는데,

다름 아닌 MBS & EFT라는 낯선 요법이다. 

MBS = Mind(마음) + Body(몸) + Spirit(영혼)

한 마디로, 마음/몸/영혼이 한데 어우러지는 인격체를 꾀하는 가르침이다.

더 이상 분열된 존재로서 인간은 덧없다.

온전한 ‘인격(person)’을 추구해야 한다.

인격(人格)은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 배우의 가면)인데,

이것은 그리스어 prosopon(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에서 비롯한 말이다.

처음으로 인격에 대한 철학적인 정의를 내린 로마 사상가,

보에티우스( Ancius Manlius Servenius Boethius, 480~524)에 따르면,

“인격이란 정신적인 존재가 나눠질 수 없게 스스로 있는 것”이다.

영혼은 몸에, 몸은 영혼에 매여 있는데,

이것은 오로지 정신이란 상관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바로 정신은 인간 행동의 장(場)인 것이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되라’는 주문은 자의식(Selbstbewusstsein)의 출발점이다.

곧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정신의 고유한 움직임(Th. 아퀴나스)이다. 

달리 보면, MBS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것 같다.

이미 숱한 논쟁의 터널을 지난 사상들의 파편들을 끼워 맞추는 것인데,

자기 몸에 맞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파편들을 마음껏 즐기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지은이는 건강/행복 /성공의 비법도 전할 속셈이다.

자칫 생각을 현실로 이룬다는 욕심 탓에 원래 의도가 왜곡되지 않기를.

자기 계발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의 목표점은 생각의 힘을 키워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하는 거다.

손가락으로 경혈을 두드림으로써 균형을 잃고 망가진 몸을 바로 잡고,

부정을 벗어나 긍정으로 가게 만드는 자연치유력을 가진 에너지 요법인

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가 그래서 필요하다.

입을 벌려 열매가 입 속에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게(정지된 몸) 아니라

입을 다물고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오르는 자세(움직이는 몸),

그런 마음가짐이 한결 더 쉽게 열매를 얻을 수 있으리라. 

나는 움직인다!

그런고로 내가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행동마다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삶일진대 변수마저 간단히 해결하는 엉터리 계발서가 즐비하다.

요즘처럼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에선 나에 대한 자심감이 절실하다. 

하나의 현상을 단순한 물리적인 사건 그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나(自我)’가 움직이는 방향, 곧 나의 지향성이다.

부정으로 향하면 부정만 볼 테고,

긍정으로 향하면 긍정만 추구할 것이다.

플라톤은 몸을 ‘영혼의 모상(模相)’이라고 한 반면에,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꼴(Lebensformen)’에 따르면,

‘몸은 인간 정신의 가장 훌륭한 모상’이다.

인간은 자기 안(substantia)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드넓은 전체를 통해 자신을 실현하는 존재다.

인간은 결국 실존(exsistentia)의 한마당인 것이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되지?]를 읽다가

잘 사는 길(행복)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가면 속에 숨은 자기의 얼굴 해 아래 떳떳하게 드러날 때

세상 모든 것이 바로 ‘나’를 향해 달려든다.

‘나’는 살아 있는가?

만약 살아 있다면... 왜? 


P.S.
알기 쉬운 인간학을 위해서 :
1. 벨라 바이스마르, [존재론 - 일반적 존재론으로서 형이상학], 서광사, 1990
2. 에머리히 코레트, [철학적 인간학], 종로서적, 1989
3. C.V. 반 퍼슨, [몸, 영혼, 정신 - 철학적 인간학 입문], 서광사,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