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라리루

 

 

책의 표지에는 제목 위에 ‘불일암 사계’라는 글이 적혀있다. 또한 띠지에는 “법정 스님, 불일암, 사계절, 15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삶을 어루만져 주었다.”라는 내용과 함께 “스님을 만나 오랫동안 잊었던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았습니다”라는 문장이 고백적으로 적혀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새겨진 삶과 법정스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대한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 이 책의 구성이다. 불임암은 정말 작고 작은 집이며 암자이다. 그곳에서 법정 스님은 차도 마시며 산보도 하며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과 하나 되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 생각이 안으로 깊게 스며들어 천하를 품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어떤 사람은 30평의 집, 40평의 집, 조금 크다 싶으면 100평의 집을 품고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천하를 품고 천하를 누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구조는 정해진 구역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폐쇄적이라면 불일암은 개방형이다. 그래서 토끼도 와서 풀을 뜯어먹고 스님이 조금은 속상해 하실뻔 한 마당에 야채들이 자라기도 전에 먹어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나눔을 하게 된 사연도 책에 있다. 그러므로 천하를 품는다는 것은 담을 쌓지 않고 몸과 마음을 개방할 때 비로소 천하와 하나가 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은 한 명의 존재가 고통 가운데 있던 다른 존재의 기댐을 넉넉히 허락하면서 그 존재가 또 다른 이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과정의 기록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늘상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같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변하고 성장하고 성숙해 간다. 순수하고 맑은 사고는 그 내용을 읽는 이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게 만들어준다. 물론 글을 쓴 이와 그것을 읽고 느끼는 이가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작가와 독자의 간극만큼 멀고도 먼 심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독자가 저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때 이 책의 평온함과 따뜻함 그리고 자연의 순리에 몸과 생각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글과 사진을 통해 평온함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