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진실을 향한 처절한 사투

예사롭지 않은 소설이다. 전 유럽에 밀레니엄 열풍을 몰고 왔다는 책 소개와 이 소설에 거침없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국 리뷰어들의 호들갑이 전혀 허풍이 아니었다. 아주 놀랄만한 사건 전개나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는지 정말 놀라웠다. 사실 <밀레니엄Ⅰ>의 초반부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밋밋한 이야기가 별다른 감정의 굴곡없이 느리게 진행된다. 게다가 날짜별로 진행되는 이야기 구성은 딱딱하고 너무 틀에 얽매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진행방식과 특이할만한 구성은 작가의 의도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시나브로 스며들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순간에 독자들은 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소설은 한 언론인의 ’사회적 지위추락’에 관한 이야기로 평범하게 시작한다. 그는 법정에 섰고, 유죄를 인정받아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 위기를 몰고 온다. 이렇게 일생일대의 위기에 봉착한 이 언론인에게 변화의 조짐이 생긴 건 은퇴한 어느 회장님의 미스터리하면서도 찜찜한 ’사건청탁’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켜온 기자라는 신분마저 없어질 처지에 놓인 언론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 덩달아 괜찮은 수익도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사건’을 맡는다. 사건은 오랜 세월동안 미제로 남아있었던 만큼 미카엘이 짊어져야 할 수고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작은 단서들이 모이고 그로 인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 짐에 따라 미카엘은 이 난제를 풀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게다가 미카엘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조력자 리스벨트가 함께하고 있다.

사건이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건 숫자와 인물에 얽힌 단서의 해석이 보다 명확해 지고, 가장 중요한 단서인 흐릿한 사진 속 인물의 정체를 알게 된 때부터이다. 또 이때부터 미카엘은 그를 노리는 음해 세력의 반격을 맞게 된다. 사건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위험해지는 미카엘. 그렇지만 미카엘의 진실의 향한 발걸음은 계속된다. 마침내 미카엘은 자신에게 엄습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다. 추악한 그네들의 행적이 밝혀지는 그 순간은 이 이야기가 소설이란 걸 잠시 잊은 채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미카엘과 리스벨트의 진실을 향한 여정은 추악한 자들의 정체와 ’그녀’의 행방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막을 내린다.

<밀레니엄Ⅰ: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편은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사건 이면에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조차 어쩌지 못하는 여성들의 비참한 모습이 담겨 있다. <밀레니엄Ⅰ>에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나타나는 여성들의 피해보고는 소설의 흐름을 방애할 정도로 무겁고 침울한 마음을 갖게 했다. 사회 여기저기서 남녀 간의 평등과 존중을 외쳐대지만 아직도 남성우월적인 망상에 빠져있는 남자들이 있고, 이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슬프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여러 크고 작은 사건 사고의 보도에 밀려 미디어에서 잘 다뤄지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도 남성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아직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어느 누구도 관심있게 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아쉽게도 <밀레니엄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에선 피해여성들에 대한 사후 보상과 여성보호단체에 대한 기부금 납부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지닌 소설임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가해자인 남성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은 반복되고 심해져서 ’만성’으로 되기 전에 그 싹부터 잘라낼 필요가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저자인 스티그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적당히 숨기고 타협하려는 자들을 역으로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닐런지...

나에게 <밀레니엄Ⅰ>은 점프해서 공중돌기까진 완벽했는데 마무리인 입수자세가 조금 아쉬운 소설이었다. 그래도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한 사건전개와 사회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멋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그 메시지를 바르게 수용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