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도 대학을 졸업하듯, 한해 한해 더해서 4년이 지나면 학사 학위 따듯 졸업이 가능한 것일까?

이십대 초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이십년도 훌쩍 넘어선지 오래지만 여전히 사회생활은 어렵기만 하다.

 

가끔 아주 오래전에 만나고 한동안 만나지 않았던 지인을 만나면 나보고 그러더라

"너도 많이 둥글어 졌구나. 뾰족하니 툭 튀어 나온 모난 돌처럼 굴더니..."

굳이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리지 않고도 이십대 초, 가시를 드러내며 자기 방어에 유독 신경을 곤두 세웠던 탓에 여유도

없고, 타인에 대해서도 넉넉하지 못해서 친구를 사귀는것도 동료들과의 관계도 참 어렵기만 했었는데,

울퉁 불퉁 하듯 큰 돌이 하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올수록 이리 저리 깍여 둥글고 작은 조약돌로 바뀌는 것처럼 사람

살아가는것도 그러한 듯 하다.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란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사회 진출을 앞두고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회 생활을 하면서 선배, 동료, 후배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능수 능란하게 살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면서도 그것이 일반적인 직장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줄 알았나보다. 

이 책이 일본에서는 꽤나 유명한 개그맨이 쓴 책이란 사실이 처음엔 의외였던걸 보면...

 

솔직히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에 대해서도 그 문화에 대해서도 무지한 터라, 작가인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와 그의

파트너인 가스가 도시야키가 '오도리'라는 2인조 개그 콤비란것도 몰랐다.

책을 통해 알게된 그들은 전국에서 제일 웃기는 개그맨을 뽑는 일본 TV프로그램 'M-1 그랑프리'에서  입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일본에서는 '만자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만자이 (만담)은 재치있고 재미있는 말솜씨로 세상을 풍자하는 등의 소재로 이야기를 말하며 청중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한쪽은 바보역할인 보케와 다그치는 똑똑한 척 하는 사람의 역할인 쯧코미로 활동하는데 주로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나 전래되는 옛날 이야기 혹은 정치, 사회적 풍자를 담은 내용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만담이라곤 장소팔, 고춘자가 떠오르긴 하지만 '개그 콘서트' 의 코너 몇과 비슷한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정치 풍자는 위축되고, 가끔 현안들을 조심스레 소재로 올리지만 그나마도 오래가지 않는것 같다.

개그가 다큐가 아닌 개그로만 보고,  대중들이 속시원한 개그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우리 나라 예능은 리얼 버라이어티나, 집단토크, 육아, 노래경연, 먹방, 요리프로들이 대세고 실제 코미디언들이 활동할

프로가 없다고 유재석 같은 탑 개그맨들이 연말 시상식때도 안타까워하던게 생각난다.

 

국민 MC라 불리는 유재석도 젋은시절 내일 뭐할지를 고민하는 긴 무명시절이 있었고 탑의 자리에 있는 현재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인 와카바야시도 어렵던 무명시절

가난했던 때의 일들도 '절약 개그'로 그 시절의 애환을 녹여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사회생활 2년차에 책을 테마로 하는 일본의 대중적인 월간 잡지 <다빈치>에 연재되던 칼럼을 1학년

시기를 더하여 출간했다고 한다.

 

사회인 1학년, 2학년, 3학년, 진짜 사회인의 단계별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의 성장 과정을 느낄 수 있다.

 

사회인 1학년.

인기를 얻고서도 머지않아 방송 일이 끊길 것 같아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지 않는 작가에겐

사회란 한달에 15만엔 이상을 벌면 매일 자택에서 목욕하고 방 온도를 자유롭게 정하는 권리가 주어지는 곳이다.

호화주택에 리포터를 하면서 본 몇백만 엔짜리 항아리를 가진게 뭐 그리 대단하고 왜 필요한지 생각하다 현장 분위기

깨고 눈총받으며 편집되기도 하는 시기.

 

사회인 2학년.

"취미가 뭐예요?"란 질문에  취미 따위 필요없어라고 속으로 구시렁 대면서도 취미를 만들기 위해 골프연습장을 가고,

군말 없이 따라 주면 될것을..손윗사람이랑 술자리에서 술을 자기 손으로 따라서 마시는게 왜 화낼 일인지 이해할 수

없어 도서관으로 달려가고, 사전적 의미대로 얻어 마실 때는 술을 따라주고, 각자 낼 때는 따라 주지 말자라 마음

먹었다던 시기.

알맹이는 바꾸지 않고 어떻게든 멋있어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평범한 빙수를 '워킹 아이스'나

액세서리를 주얼리라고 말하는걸 못하면서, 남자가 성인비디오를 빌리는 행동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시기. 꿈일기를 쓰고, 목표를 세우고 해야 할 일을 예정표에 채우면서  일이 없어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열등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던 시기.

 

사회인 3학년.

직설적인 말을 부드럽게 바꾸고 말도 골라서하고, 감정도 골라서 드러내면서 대외적인 반응에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의 본심 따위는 어떻든 좋았고, 속마음이 어떤지 모르게 되었다는 시기.

자력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부정적인 감정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은 역시 마음이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괜찮아지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행복이란 절규와 절규 사이의 금방 녹아버리고, 많이 먹으면 질리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은 걸까하는 생각을

하던 시기.

 

사회인 4학년.

서른셋쯤, 후배는 선배보다 어렵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 한번도 밥을 사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려 후배를 부를

때도 문자 내용을 신중하게 확인하고 보내고, 말 한마디도 설교나 듣기 싫은 소릴 한건 아닌지 생각이 많은 남자.

 

진짜 사회인.

사진 촬영을 할 때는 웃는 게 좋다.

학교 축제에는 참가하는 게 낫다.

브랜드 제품은 질이 좋아서 오래간다.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이 세상 살기에 편하다.

낯을 가리니 뭐니 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는 대신 여러 사람과 만나는 것이 좋다.

취미 따위 필요 없다, 라는 취지의 글을 썼는데 취미는 자신의 본업을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어서 좋다.

모두가 말한 대로였으나, 모두가 말한 대로의 세계는 재미가 별로 없다는 작가.

 

개그맨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듯,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하는 사회생활이란 무대는 다르지 않다.

무대위에서 어떤 모습을 연기하든 각자의 안에는 여리고, 여전히 낯가림이 있고, 일보다는 인간 관계가 어렵다.

이 책으로 그런것들이 해결되고 졸업 할 수 있는 해답은 아니지만 잠시 쉬어가는 쉼표가 되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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