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기에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이 해피한 모습은 아닐거라 생각은 했었다. 느낌 그대로 이 책에 담겨진 9편의 이야기 모두 이별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네 삶이 언젠가는 이별이란 아픔을 겪게 된다고는 하지만 슬픈 이별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책에는 슬픔보다 더한 분노, 처량함, 씁쓸한 이별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서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첫번째 이야기인 [이별의 과정]은 10년을 넘게 사귀었던 남자와 이유없는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별은 오래도록 생채기를 남기는 아픔이 있는데, 그녀에게 이별은 인생을 살면서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음에도 별다른 이유없이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할 수 있는 어찌보면 나쁜 여자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디로 갈까요?]는 허울좋은 의사 남편이 빚만 잔뜩 남기고 심장마비로 죽은 후 여자는 힘겨웠던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목적지 없이 여행을 떠난다. 로마에서 만난 민박집 주인 남자 또한 빚으로부터 도망친 한국인, 하지만 그의 친절이 부담스러웠던 그녀는 또 다시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 가장 안타까웠던 이야기 중 하나다. 그녀가 새로운 곳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랬는데 마지막까지 그 남자가 여자를 잡아주기를 바랬는데 이별이 주제라 그런지 결국 또다시 이별로 이야기는 끝난다.

 

[애플민트 셔벗 케이크] 제목은 너무 멋진데 내용은 상큼함과는 거리가 먼 쓴맛나는 이야기다. 남편의 불륜때문에 이별한 유명학원의 토익강사..이혼했음에도 그녀의 노트북에는 전남편의 불륜증거물들이 빼곡히 저장되어 있다. 아마도 여주인공은 이혼 후의 삶을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채워가기 위해 그 사진들을 남겨둔것은 아닐지..얼른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며 그녀의 쓴맛나는 인생이 걱정되기도 한다.

 

[돌아본다면]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대학시절 복학생 남자와 잠깐의 연애담을 훗날 자신의 어둡던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해 그 남자와 거짓 사랑, 이별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로 꾸며내는 여자,  [거짓말]은 500원자리 고추장때문에 24살의 나이로 방파제 돌더미에 빠져 죽은 오빠와의 이별때문에 가족들은 그후 오랜 세월동안 빨간 고추를 외면하고 산다. 오빠의 석연치 않은 죽음의 원인이 함께했던 여자때문일거란 추측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리며 이별의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과 왜곡으로 얼룩진 이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별이란 단어에는 감동이 더 많을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렇게 씁쓸함과 아픔, 위선이 더 많이 포장되어 있어서 읽고 있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9편 모두 섬세한 주인공들의 심리를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상처로 가득 메워진 이별이기에 누구보다 그 상처를 보듬어 안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상처를 치유해가면서 삶을 이어가는 애잔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