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큰아이가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하루동안 동네 소아과 병원을 세군데나 다녔지만 차도가 없어 결국 소아종합병원에 갔다. 두시간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는데 단 한마디 '감기입니다. 약 받아가시고 내일 다시 오세요'였으며 2분 진료받고 나왔다. 궁금한 걸 물을수도 없었다. 너무 바쁘니까..다음 환자를 벌써 호명하고 있었다. 그때의 서운한 기억때문에 그 뒤로 종합병원엔 가급적 가지 않는다. 신의 카르테에 등장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서운한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든다.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의 고충이 이해되었다.

 

24시간 365일 진료를 모토로한 혼조병원에 쉴 틈없이 밀려드는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괴짜 구리하라는 진정한 의사다. 직업인으로서의 의사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고 환자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다. 혼조병원에는 구리하라외에도 괴짜의사들이 많다. 내과부장을 맡고 있는 왕너구리 선생님과 내과 부부장인 늙은 여우선생님이 24시간 365일 진료를 주창한 분이시다. 두분 모두 신슈의 열악한 의료체계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이 있은 후 어떠한 일이 있어도 환자를 외면하지 않는 의사가 되기로 두분이 약조를 맺었다. 그후 혼조병원 의사들은 환자가 있으면 새벽에라도 달려오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한다.

 

구리하라의 대학동기이자 절친인 도쿄병원 혈액내과 신도 다스야가 혼조병원으로 옮겨오면서 24시간 모토에 분열이 생겨난다. 혈액내과 최고의 의사이지만 정시출근, 정시퇴근하는 다스야의 행동은 결국 환자와 간호사 그리고 다른 의사들에게 불만의 대상이 된다. 구리하라는 친구 다스야에게 의사로서의 본분을 이야기하지만 다스야는 의사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이야기한다. 24시간 환자만을 위해 일하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가..의사에게도 돌봐야 할 가족이 있으며, 의사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환자를 돌보는게 옳은 일인지..반문한다.

 

나도 구리하라의 헌신적인 환자 돌봄에 이건 아니다란 생각을 가졌었다. 의사도 사람인데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환자만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 의사의 본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스야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저러다 구리하라도 쓰러지지..란 기우가 늙은 여우선생님에게 나타났다. 24시간 모토의 창시자인 늙은 여우선생님은 환자 돌봄에 최선을 다하고 아름다운 생을 마감한다.

 

한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를 본 것 같다. 모처럼 따뜻한 마음과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 책이다. 진심으로 가족처럼 환자를 대하는 혼조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은 행복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신의 영역인 죽음앞에서만큼은 의사들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마지막까지 이승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혼조병원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아직도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