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범죄현장의 악의적 긴박감을 다루고 있음에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라디오 방송극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과 이를 상대하는 경찰을 대리한 협상자인 심리분석가의 대화에서 흘러나오는 진실의 이야기들, 상처 받은 자들의 고통과 그것에 침잠해있는 무력감, 죄책감, 그리고 사랑의 진정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장면부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의외와 당혹스런 상황에 노출되는 인물들을 통해 짧은 호흡에 따른 긴장감으로 신경을 바짝 조이기 시작하는데, 작품전체의 기저에 흐르는 본원적이라 할 수 있는 인간 내면에 대한 연민과 위로의 진실성과 대비되어 폭력성과 갈등, 궁지로 몰아대는 겁박의 무자비성, 알 수 없는 음모 등 무작위로 전개되는 위악성을 보다 선명하고 자극적으로 인지시켜 스릴러만의 감각적 재미를 증폭시키고 있다.

 

딸아이의 자살로 회복 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을 준비하는 심리분석가인 여자경찰,‘이라’,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전화속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교통사고 사망소식을 들어야 했던 정신상담 의사인‘얀마이’, 이들이 경찰과 인질범이란 위치에서 대치하는 구성은 삶의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연인 ‘레오니’의 의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남자는 베를린시의 유명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를 점거하고 인질극을 펼친다. 자신에게 레오니를 찾아 데려다 달라는 일견 황당해 보이는 요구를 하는 것인데, 인질 살해의 조건 또한 우연성에 기초하고 있어 그 공포는 더욱 극대화된다.

 

일명‘캐시 콜’게임이란 것으로 라디오 방송도중 1시간마다 임의로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는 자가 “101.5 방송을 듣고 있어요. 이제 인질 1명을 풀어주세요. ”라고 구호를 외치면 인질은 살해되지 않으나 이 구호를 외치지 못하면 인질은 즉시 살해된다는 것이다. 결국 베를린 시민 모두가 이 살해상황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가능성이 희박한 요구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범인이 요구하는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그의 사랑하는 여인 레오니의 죽음에 음모가 있음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이면의 다른 의도를 은폐하려는 범인의 속임수인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 더해 두 심리 전문가인 범인‘얀마이’와 협상자인 ‘이라’의 전화 대화를 통한 심리대결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고통의 본질을 탐색케 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에 이르는 여정과 동시에 그들의 정신적 상처의 치유로 향하는 번뇌의 과정을 관찰하게 한다.

범인이 내건 조건의 야비함이 실행될 경우 인질의 살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경찰의 내부에서도 강경진압과 협상을 통한 인질석방이란 대응방법의 갈등으로 분열되고 음모가 개입된 듯한 석연찮음으로 인질사건은 또 다른 사건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스튜디오라는 폐쇄된 장소에서의 인질극으로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범죄에 범죄의 원인일 수 있는 연인 레오니의 의문의 실종사건, 그리고 협상자인 이라의 자살한 딸과 관련한 죽음의 진실, 우연처럼 보이는 인질범과 협상경찰인 얀마이와 이라와의 막연한 연결고리에 대한 의문까지 가세하여 다층적인 추리사건으로, 심리게임으로 내용은 풍성하게 확장된다. 인질범이 제기하는 실종사건에 대한 의문의 증거를 무시하려는 경찰내부, 혹은 외부의 보이지 않는 세력, 인질범의 인질 살해의 진위성을 타고 종말을 향해 치닫는 점점 고조되는 사건의 전개는 그야말로 소설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한다.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엄마와 가족으로부터 떠나야 했던 이들의 딸과 여인을 둘러싼 진실, 그리고 그들이 왜 자신들을 세상으로부터 거둬들여야 했는지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의 고통,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무기력과 죄의식이라는 치유 할 수 없는 상처가 흐르고, 또한 자신의 영욕을 위해, 사욕의 은폐를 위해 인간의 사랑과 삶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의 파렴치함도 흐른다.

세상에 노출 된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 사건의 배경과 사건을 구성하는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들의 이야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소설은 자극적인 인질사건의 범죄성만을 보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그것에는 우리사회가, 우리 인간 개개인들이 저질러대는 이기심과 게걸스런 탐욕, 타자에 대한 무관심이 놓여 있다고 말이다. 이 유럽의 범죄 소설은 영미식 스릴러의 원색적이고 기교적인 작품과 달리 깊은 사색과 독특한 발상들, 우아함까지 체험케 한다. 가히 매혹적인 심리 스릴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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