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풍미(風味)를 즐기거나 알지도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음식에서 뭐 고상한 맛을 음미한다거나, 식감이란 것에 대해 민감하지도 않으며,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수고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먹지 않고 살 수도 없는 법, 우리 산천의 이곳저곳을 둘러 볼 기회가 될 때, 전국 방방곡곡 맛있는 음식과 식당에 대해 이‘맛의 방랑자’가 모아 놓은 맛과 인심과 자연의 정보를 앉은 자리에서 거저 얻고자 하는 것은 괜찮은 접근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뭐 대단한 음식이거나 고급요리를 연상했던 것과는 달리 흔하디흔한 국수(칼국수, 막국수, 잔치국수,...)아니면, 물회, 젓갈 등 수산물이 고작이다. 그렇다고 지역 최고라 알려진 식당의 대표 음식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찐빵, 납작만두, 이름 없는 밥집이나 헤매고 다니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표제인“맛있는 인생”을 비로소 깨닫는다. 바로 사람들의 살 냄새, 숨 냄새, 인생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나는 그런 장소와 맛 집들임을...

“고향의 구수한 냄새, 추억을 먹는다.”고 했던가? 아마 사람 맛, 계절 맛, 자연 맛, 토속의 그 무엇들에 관한 맛이 흐른다.

허름한 삼각지 뒷골목의‘옛집’이라는 국숫집 주인장의 후덕한 일화에서부터 가격표 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문턱 없는 밥집이 있는가 하면, 강원도 곤드레 밥과 초당 순두부에 얽힌 역사와 전통의 얘기도 흐른다. 그리곤 날 선 타박도 하는데, 전통 민속식당에서 분식집에나 어울릴 멜라민 식기를 내놓는 것은 어색한 부조화는 물론 왠지 낯부끄럽기조차 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시골 아침밥상 그대로를 마주하기 위해 추천장소를 마다하고 순창의 작은 동리를 찾아가, 아주머니가 차려내는 인심과 순박한 정취가 가득한 밥상으로 잊혀지고 사라져만 가는 우리네 정겨움을 다시금 지펴내기도 한다.

“음식을 안다는 건 계절을 아는 것이고, 계절을 안다는 것은 자연을 안다는 것. 그래서 궁극의 미각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데 있다.”고, 맛은 단지 달콤하고 담백하다거나 향기롭다거나 아님 오묘한 조화의 맛이라거나 하는 오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인간의 마음이 있고, 자연의 정취가 있음을, 즉 세상의 이치가 있음에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강원도 평창의 봉평, 화천, 강릉에서 전라도 군산, 전주, 목포, 순창, 여수, 그리고 제주도, 경상도 대구, 영덕, 울주, 하동포구와 인천 등 30여 지역에 이르는 나그네의 발길이 닿는 소박한 인생의 맛 집들은 유기농이나 규격화되고 특화된 곳들이 아니다. 그곳에는 사람 사는 맛, 그리움의 맛, 우리의 맛이 있는 곳이다. 시골 5일장의 투박한 산물들과 산지에서나 보게 되는 청어과메기, 포구에 잠수하여 채취하는 벚굴, 강원도 깊은 산 속 혹한에서 말리는 황태이야기에서 세월과 함께 변해갈 수밖에 없는 우리네 밥상의 변화도 가늠케 된다.

“건강만 추구하는 사람은 맛의 세계를 누릴 수 없다.”고 한단다. 건강이란 목적을 염두에 두고 먹는 음식에서 무슨 맛이 있겠는가? 시골 여인네의 인심이 담뿍 담긴 소박한 밥상, 가난과 굶주림을 죄라하지 않는 어느 식당주인의 배려와 나눔, 자기 정성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 장인정신, 바로 이러한 이들이 차려내는 음식과 사람들이 있으면 맛과 건강이란 절로 챙겨지는 것일 게다. 사람 냄새 물씬 나고 추억까지 톡톡 두드려주는 괜찮은 맛 유랑기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