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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에 수북이 쌓아두고 긴 호흡의 대하서사를 읽을 만한 긴 겨울밤이 어느덧 다가와 있다. 근자에는 이렇게 무게감을 지니고 길게 저작된 소설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내심 없는 조급한 세태와 독자들을 탓하고, 역사의 빈칸이 사라져 상상력이 들어갈 여지가 줄어들었다느니, 감각적이고 순간적 재미에 경도된 이벤트사회에 그 원인을 돌리지만, 문학의 근원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의미를 상실한 채 스스로의 정신적 폭과 깊이를 포기한 천박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작가는 드라마, 영화를 염두에 둔 상업적 성공에 가치를 두고, 가볍고 자극적인 그리고 또다시 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마케팅과 판매라는 쾌락적 성공에만 관심을 보내는 출판기획시장이 결합하여, 문학을 엔터테인먼트에 머물게 하고, 긴 이야기, 대하(大河)소설이 들어설 자리를 없애버렸음을 부인 할 수 없다. 더구나 사람들의 장구한 생애나 역사 따위를 길고 긴 호흡에 담아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찾아내지 못하고, 의미 지향이라고는 없는 현대인의 무모한 체험 갈증에 편승하여 찰나적 재미에 치중한 짤막한 이야기로 돈벌이라는 성공에 경도된 젊은 작가들의 의식 또한 이러한 현상에 한 몫 한다.

긴 이야기는 안 팔리는데, 젊은 독자들이 참아내지 못하는데, 방법이 없지 않느냐? 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대하소설로서만 비로소 그 완만한 전개에 잡다한 인간사와 인물을 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기껏해야 300쪽 남짓한 한권의 책에 도저히 담아 낼 수 없는 우리만의 보편성(서구가 오만하게 지칭하는 특수성이 아니라), 우리의 서사, 우리의 문학적 상상력이 있다. 굳이 분량적 측면의 분류인 대하소설(roman-fleuve)에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라, 소설문학의 지향점과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모처럼의 긴 시간이 주어지는 겨울방학, 추위와 일찍 찾아오는 겨울밤 탓으로 외출이 줄어드는 시절에 여간해서는 손에 잡을 수 없었던, 우리들의 대하서사 문학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호흡이 짧다느니, 인내심이 부족하다느니, 감각적 쾌락만 쫓는다느니 하는 왜곡된 시장의 식견을 떨쳐내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주관적 이해와 감성이란 편협함에도 감히 20세기(1900~1999)에 발표된 한국의 대하소설 중 나름의 명편(名篇)들을 추천해 본다. 3,000~4,000쪽에 달하는 하나의 작품을 읽고나면, 아마 엄청난 정신의 성장을 느낄지도 모른다... 의미화하지 못한 일시적 체험이 아니라 진정한 경험으로 말이다...

[註]대하소설이란: 긴 시간동안의 이야기와 중첩되는 사건들, 많은 등장인물이 큰 강물이(大河) 흘러가듯 완만히 전개되기는 형식의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로는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천하’,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 황석영의 ’장길산’,최명희의 ’혼불’, 홍명희의‘임꺽정’, 김주영의‘객주’등이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하소설에는 로맹 롤랑의《장 크리스토프》, 마르셀.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a Recherche du Temps Perdu, 》, 마르탱 뒤가르의《티보가(家)의 사람들：Les Thibault》, 뒤아멜의《파스키에가의 이야기：Chronique des Pasquier》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