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생각하면서 문득 스친 섬찟한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이든지 국회의원이든지 오늘날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부자들을 위한 감세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시민들의 문제제기를 공권력으로 틀어막는 정부의 자세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불현 듯 찾아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대다수의 갖지 못한 사람들이 받게 될 억압과 착취, 합법을 가장해서 다가오는 불이익이 얼마나 크고 힘든 것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의 『예언자적 상상력』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1978년도에 초판이 나온 이후, 또 개정판이 나온 2001년도에서도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을 점검하게 하는 적실한 책이다.

역사는 언제든지 기득권을 행사하려는 무리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굴러가는 사회를 보면 인간 사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권력자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봉사의 과정이 항상 억압과 착취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런 일이 문제로 드러난 적은 별로 없다. 사회의 주류들이 그것을 애써 감추기 때문이다.

브루그만이 본 것 중에 그렇게 생긴 대표적인 사회로 꼽을 수 있는 곳이 파라오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억압받고 고통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사회가 이집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포함해서 인류 역사 내내 그런 흐름들이 있었고, 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해서 굴러가는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것은 존재한다. 저자는 이런 곳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예언자라고 말한다.

흔히 예언자를 말할 때 미래를 내다보는 점술가를 먼저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그림 그리는 예언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 저항가를 예언자로 그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예언자는 인간 정신을 획일화하고 노예화하는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한 공동체의 근원적인 변화를 촉발시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이 월터 브루그만이 본서에서 정의하고 있는 예언자의 모습이다. 책에서는 모세, 예레미야, 이사야, 예수가 예언자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서있는 사회에서 무감각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운이 좋아서, 아니면 세상이 좋아져서 자기도 그렇게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좋은 것들을 소비하면서 살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치열하게 공부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전부 그런 목적을 위한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형태는 다르지만 왕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역할은 그렇게 무감각 상태에 있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드러내고 주류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판은 분노의 비판이 아니고 고뇌하는 비판이다. 그리고 그 고뇌는 다음 단계인 활성화로 나아간다. 그것을 저자는 경탄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포로생활의 종식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역사다. 예언자는 이것을 상상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상상하는 것만큼의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미래에 대한 상상은 그래서 중요하다.

브루그만은 예언자들의 이같은 상상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됨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는 예수의 탄생 자체가 지배문화에 대한 비판이 되고, 그 외에도 예수에 관련된 모든 것이 대안의식의 등장을 보여주는 사건이 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목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 우리의 세계에서도 이와 같은 예언자적 상상력에 의한 목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도의 자본주의 안에서 소비를 미덕으로 삼고, 그것을 위해서 경쟁과 탐욕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정신에 의해서 자신의 사상과 정신을 저당 잡히고, 벼랑 끝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투쟁하는 검투사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 문화에서 교회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욕구를 축복해주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교회조차도 왕권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저자가 오늘 예언자적 목회가 더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람들이 꿈꾸는 것처럼 기존 권력자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감옥에 가고 그것으로 유명인사가 되는 것을 예언자적 목회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언자적 목회는 단지 어떤 형태로든지 억압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정신을 깨우고, 그들의 현실을 슬퍼하고, 그럼에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미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리면서, 그들과 그 꿈을 나눌 수 있는 목회를 의미할 뿐이다. 이를 위해서 브루그만은 자신이 경험한 예언자적 목회의 사례를 책 말미에 소개했다. 알츠하이머 병과 치매 노인을 돌보는 목회, 범죄에 노출된 가정을 돌보는 목회, 음식과 잠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쉴 곳을 마련하는 목회, 지미 카터의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이 그런 사역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 가난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승리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진정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은 오늘 한국 사회에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교회가 그런 일들을 가치 없는 것으로, 혹은 더 나은 위치로 올라가기 위한 받침대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숫자에 민감하고, 더 커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고, 큰 교회는 더 큰 매가처치로 발돋움하기를 목회의 성공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소중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목회 현장이 세상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교회를 교회됨의 본질로 초청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의 가치가 돋보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