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 음식 맛은 정말 기가 막히다.  부모님 두 분만 드실 음식만 만드시면 되는데, 맞벌이 하는 자식, 혼자 독립해서 직장 생활하는 자식, 장사를 하느라 잠이 부족한 자식들 생각하느라 어느틈에 음식양은 훌쩍 10인분이 넘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어머니는 음식 만드실 때 양념을 조미료통을 집어서 눈대중으로 넣으신다. 그래도 늘 똑같이 감칠맛나는 어머니의 맛이 난다. 미식가인 내 입에 수많은 양념 게장 무침과 삭힌 가오리 찜이 들어왔지만 어머니의 그 맛은 절대 따라오지 못한다.

특히 찜통에 막 쪄서 내온 진하게 톡 쏘는 가오리맛은 일품이다. 다른 양념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찬밥에 물을 말아 수저에 가오리를 올리고 입 안에 넣었을 때의 그 맛은 우리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에게도 그리운 어머니의 맛이 있다. 새콤한 과일 물김치이다. 파키스탄의 길기트의 외롭고 고단한 여행길,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음식이 더욱 그리웠을 것이다. 엄마의 음식은 약이라고 표현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오랜만에 맘에 들어오는 글을 읽었다. 눈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었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 이병율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냥 뭐 비슷한 여행산문집겠지.'하고 읽기 시작한 글들은 어느틈엔가 마음 속으로 쏙쏙 들어와버렸다.

수많은 여행지에서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법이다. 똑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도 어느 장소에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누구와 먹는 음식이냐에 따르다. 작가가 여행지에서 맛보았던 음식에는 그만의 추억이 들어있다. 이집트에서의 감자 볶음. 남부 인도에서의 조갯국, 그루지아의 힝카리로 만든 만둣국, 푸쉬카르에서의 조촐한 생일 축하 팬케이크. 샌프란시스코의 빅햄버거 만들기. 팔미라의 푸른 올리브로 만든 파스타, 쿠바의 모히토,,,,,

더러는 슬픈 기억, 더러는 즐거웠던 기억이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면 모두가 소중한 추억들이다.

 잊어야 할 일들이 잊히지 않는다면, 잊으려 애쓰기보다는 잊힐 추억을 맏늘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과거란 다가올 추억에 밀려나는 일만 남는다는 것.          -p47

스리랑카에서 만난 어느 청년. 한국어를 배운 후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으로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 꿈인 그를 만나 짦은 기간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그의 아버지는 나무에 직접 올라가 야자열매를 한통씩 따 주었다. 마지막날 전해 준 야자열매 두 통. 최고의 선물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직직하여 몇 모금 마시고 버리는 하찮은 야자열매일 수도 있지만, 청년의 아버지와 작가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인도 갠지즈 강. 인도인들을 품은 강이며 생명처럼 여기는 강이다. 몸을 담고 기도하는 사람, 빨래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강물에는 시체를 태운 재들이 떠돌아 다니며. 그 강물을 떠서 제단에 바친다 .  오래오래 살다가 갠지즈로 돌아가는 소망을 안고 있는 디아를 파는 소녀와의 만남. 많은 여행자들은 수시로 할아버지의 짜이차를 사 먹는다. 한 잔을 다 비우고 또 한 잔을 주문한 작가의 눈에 비친 모습. 갠지즈 강물을 주전자로 떠 온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맛을 내는 이유는 바로 그 물이 갠지즈 강물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나는 작가가 차려낸 식탁에 앉아 그의 추억 이야기를 들었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내가 그곳에 있는 같이 있는 착각을 하면서 들었다. 소박한 음식이 가득한 식탁.

오늘 저녁엔 영화'그린파파야 향기'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