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소설을 읽다보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은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한 전혜정이라는 작가의 글을 하번도 접한적이 없어 솔직히 낯선 작가의 낯선 글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집어 들었는데 사실 내 취향의 소설은 아니다. 어딘지 기괴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문체는 분명 흡입력이 있어 끝까지 글을 읽어내려 가게 만드는 힘은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무겁고 슬프지만 아름답게 혹은 현실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랄까?

 

집에서 암소를 키우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나와 미스 마들렌]의 이야기에서는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또한 가정의 불화로 괴로워하는 한인간의 모습을 통해 요즘 사회가 보여주는 행태를 비판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죽음의 도시]의 굉음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이 작가가 너무 이 사회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달까? 요즘은 정말이지 기이한 현상들이 하두 많아 그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일들이 많다지만 그래도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리로 인해 갑작스럽게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고, 목을 매달고, 독약을 마시고, 자동차로 뛰어 들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란 결코 달갑지는 않다. 그런데다 죽음의 도시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잔인한 현실까지 이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있을까?

 

나는 그의 말대로 D...로 갈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과연 지옥이라 부를 만한 곳인지 스스로 알기를 원했다.

그때까지 나는 줄곧 보고 있던 수평선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나의 신이 내게 주시는 하나의계시로 여겼다.  ---p99

 

그리고 죽은 자들의 시체를 끌어 올려 불태우는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불리는 군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해협의 빛]. 저 멀리 D라는 도시에서 떠내려 오는 시체들을 끌어 올려야 하는 그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얼까? 역병의 창궐로 신이 지상에 실현한 지옥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D라는 그 도시는 도대체 어떤곳이란 이야기인지 밑도 끝도 없이 전개되는 작가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약간은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느낌을 갖게도 한다.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 그 의문의 도시와 역병! 자신들을 다스리던 군목마저 그 역병에 쓰러지고 이제 일거리도, 자신들을 통제하는 것도 없이 자유를 얻은 그들이 자신들의 유희와 쾌락을 위해 생각해내는 온갖 놀이들은 어쩌면 고립된 공간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최대의 놀이인지도 모른다. 이름도 불분명한 그 도시에 대해 어쩌면 약간은 동경해 마지 않는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는 그녀의 문체들이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어느 마을을 점령한 무장 군인들의 횡포앞에 무기력하게 몸이 망가지면서도 끝까지 살아 남으려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와 양의 가죽을 자신들의 몸에 꿰메어 네발달린 동물의 형벌을 받는 이교도들과 마녀로 몰려 불에 타는 한 소녀의 죽음을 보면서 그녀가 정말 마녀라고 여기는 그들의 이야기와 중편에 가까운 그 시대를 규정짓기 어려운때의 노예와 황후의 금단의 사랑과 그 형벌로 처형의 골짜기에 던져져 독수리에게 살점을 뜯기고도 미생물들에게까지 모두 내어주어야 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까지 모두 내게는 참 낯설고 잔인하게만 여겨진다. 하지만 분명 모든 단편들을 읽으며 그녀만의 독특한 화법과 이야기전개를 놓지지 않으려 글을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소설을 보는 사람들의 부류가 슬프지만 아름답고 아프지만 행복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둡고 암울하고 기이하고 잔인하지만 그것을 아름답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은 후자의 사람들에게 더 끌리는 책이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