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무관이었던 노상추가 남긴 일기를 통해서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즘의 일기와는 달리 개인적 감상 보다는 집안의 경영 기록에 가깝다. 출생과 사망, 토지의 매매, 과거 응시와 급제, 관직 진출 등 공적인 일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고 일기를 쓴 작자의 감정은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보통의 통큰(? ㅎㅎ) 역사서에서는 찾기 힘든, 일상의 생활사를 통해서 오히려 조선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문과를 보려고 준비하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무과시험을 보는 주인공을 통해서 과거 준비와 급제의 어려움을 볼 수도 있고. 과거를 급제한다고 하더라고 적당한 자리에 임명되기까지는 긴 대기시간과 소위 행운이 따라야 함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토지 매매 등 각종 기록을 통해서는 그닥 넉넉하지 않았던 하급 무관이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일상 생활에 대한 모습을 통해서도 양반과 노비의 관계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역사의 편린을 보게 된다. 노비가 스스로를 자매하기도 하고, 그 노비를 남편이 찾으려고 소송을 벌이기도 하고. 아쉬운 것은 너무나 간략하게 기록만을 남기고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 ㅠㅠ 노상추에게는 후대를 위한 서술이 아니니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그 시대의 자세한 모습이 궁금한 독자에게는 조금 약오르는 일이다. 그 밖에도 양반관료가 지방의 관리로 나가서 낳은 자식들의 이야기까지 역사의 뒤안길이 생각보다는 흥미롭게 펼쳐진다.

집안의 친척 중에서 서얼 출신이 돈을 많이 모으자 노상추를 중심으로 한 집안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장면에서는 조선 후기 신분제의 변동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