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통해서 보는 한국 근현대 110년의 단면이 재미있다. 읽기에 어렵지도 않고, 자료도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다. 초기에는 서양문명의 상징으로 부유층이나 권력층만 즐기던 대한 제국기의 커피에서부터, 일제 강점기의 우울한 지식인(식민지 정부에 몸을 담기 싫었고, 다른 뚜렷한 직장은 구하기 힘들었던 지식인, 룸펜, 작가, 예술가 등등)의 보금자리였던 다방, 해방 후에는 앉은 손님 중 70-80%는 사장님이었다는 사기꾼과 얼치기 사업가의 사무실 역할을 했던 다방 등을 배경으로 커피의 역사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 속에서 때로는 울분을 터뜨리는 음악을 함께 합창하는 사건도 일어나고, 많은 작가들이 생활방편으로 다방을 운영하기도 하고. 해방 직후 미군을 통해서 뿌려진 커피를 둘러싼 각종 에피소드. 레이션 박스에 들어있는 커피의 용도를 몰라서 커다란 가마솥에 삶아도 보고, 먹고 설사를 하니 회충약이라고 믿고 온 동네가 돌려 먹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외화 낭비와 등등의 이유를 들어 다방을 단속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기자나 공무원의 다방 출입을 금지하기도 하고.....

다방과 커피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를 쫓아가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1920년대 초에는 마치 커피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소개되기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다방의 확장세를 걱정하기도 하고.

그 중에서 압권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신문기사이다.
5.16 군사쿠데타 세력은 이른바 사회정화와 외화낭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다방을 강력히 단속하는데, 신문기사는 이 사건을 "군사혁명으로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세워져서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이권 청탁이 없어지니, 다방을 근거지로 삼아 활약하던 사기꾼들이 다 사라져서 다방 영업도 시들어 가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당당히 내어놓는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굴종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듯..... 요즘은 언론들은 어떠신지? 권력에 여전히 굴종하는지, 아니면 아예 권력과 손을 잡고 권력의 한 축이 되셨는지.....

묵직한 두께와 어려운 이야기로 가득찬 근현대사가 좀 버겁다면 가볍게 보기에도 좋은 책이다. 저자가 강준만님으로 되어 있어 뭔가 좀 더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을 기대 했었는데, 대학원생이 자료 수집과 주 필자이고, 강준만님은 그저 사료의 이용과 배치에 도움을 준 정도이지 싶다. 생각보다는 필자의 색깔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