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지에 대해서는 의외로(?) 제대로 된 연구서가 별로 없다. 책을 검색해보면 대부분 아동용 위인전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의 책이 관심을 끌었다....

전공자보다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쉽고 편안한 책이면서도 자료에 각주가 자세히 달려있어서 더 알아보고 싶은 독자들도 배려했다. 컬러로 처리된 각종 화료한 도판과 유물이나 복식의 복원 일러스트, 지도 등도 고선지가 살았던 시대와 고선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고선지에 대한 사료 자체가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선지와 관계된 중국의 각종 사료와 연구성과, 서양 학자들의 고선지에 대한 평가까지 최대한 소개한 저자의 노력은 인정할 만 하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답답하고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책은 마치 고선지 평전이라기 보다는 성인용 버전으로 만들어진 고선지 위인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고구려 노예 출신에서 중국 최고의 장군으로 성장했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고선지의 일생을 따라가는 저자의 시각은 객관성이 결여된 위인전을 보는 느낌이다. 각종 사료에서 고선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한족의 질투심이나 서양학자의 몰이해로 해석되고, 인간 고선지의 약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족에 의해 의도적으로 폄하당한 고선지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고선지를 무결점의 위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대상인물이 고선지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저자의 잣대는 객관성을 잃는다.  가령 고선지가 젊은 나이에 장군이 된 것을 아버지의 덕이라고 평가한 중국 쪽 사료에 대해서는 고선지의 전공을 의도적으로 폄하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고선지의 아들이 고선지 덕분에 일찍 장군이 되었다는 사료에 대해서는 아무 평가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고선지의 고속성장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고선지의 직속상관의 영향은 애써 축소하면서, 고선지 부하의 고속성장에 대해서는 부하의 공로를 제대로 평가하고, 능력에 따라서 승진을 주선하는 고선지의 능력에 대해서 수차례 칭찬을 하는 등....

제대로 된 고선지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아쉬운 대로 고선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만족스럽지 않다. 자랑스러운 고구려인이라고 칭송만 하기 보다는 고선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좀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도 좀 어색하다.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에 패하면서 많은 중국인 포로가 이슬람 제국으로 끌려가서 중국의 문명이 이슬람에 전파되고, 특히 제지술이 전해지면서 이슬람의 출판문화가 발달하고, 그 제지술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르네상스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마치 고선지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유럽 문명에 기여했다는 식의 제목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고선지가 유럽의 문명의 뒤처짐을 아쉽게 여기고 탈라스 전투에서 패하고, 제지공을 이슬람 제국에 파견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고선지가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있을 때 동서교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드는데.... 그 부분은 사료가 없는지, 별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