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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있는 부모의 에너지가 활성화 상태라면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바람은 소용없다. 행동 치료와 정신 분석이 갖는 한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정신 분석으로 부모와 관련이 있는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있지만, 환자의 두려움을 없애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모의 에너지가 우리 안에 깃들어 기생하는 한 자유를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책을 놓고 박수를 쳤다. 드디어... 드디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구나. 그 놈의 정신분석... 내 주변의 어줍잖은 상담가들... 특히 칼 로저스의 딸에게 배웠답시고 현실 세계에서 누구도 자신에게 상담을 의뢰하지 않았는데 일상생활 중에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상담사가 내담자 이야기를 듣듯 반응하는 그 돌팔이들에게 정말 질린 나로써는 정신분석의 한계를 까발리는 이 대목에서 통쾌함마저 느꼈다.

심리상담은 만능이 아니다. 일정 부분,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 상담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고통으로 밀어넣는 자기 자신의 패턴과 습관을 어느 정도 발견했으면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짜심리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상담쇼핑’을 시작한다. 상담을 통해 맛보았던 ‘아하!’ 순간을 잊지 못해 그러한 ‘아하!’하고 깨닫는 순간들이 늘어나면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이 상담사 저 상담사,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을 돌아다닌다.

그 중에 나름 많이 배웠고 머리 좋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빠지기 쉬운 덫이 정신분석이다. 과학적으로도 너무 논리정연하고, 원인과 결과가 딱딱 들어맞기 때문에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양,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대단한 착각이다. 문제를 ‘안다’는 것이 그 문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담배를 끊는 방법(전기담배든 사탕이든 침이든 약이든)을 안다고 해서 담배가 저절로 끊어지는가?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문제를, 상담은 이리 꼬고 저리 꽈서 인간의 심리 안에 뭐 대단한 거라도 있는 양, 인간이 받은 상처가 불치의 병이라도 된 양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물론 이것은 상담 이론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상담사의 문제일 확률이 높지만)

상담은 ‘학문’이다. 학문은 ‘참’이 아니다. 인간이 머리로 일구어낸 것 중에 참이 있던가? 왜 상담이 자기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발견하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는지... 10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신분석 5년 받고 자기 자신에 대해 2,000매짜리 책 한권을 완성한다 한들 자기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현실적, 직접적, 물리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반가웠다. 직접적으로 두려움에 직면하지 않고서는 그 부분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음을... 단정적으로 말해줘서 반갑고 또 고마웠다. 내담자들 돈이나 빼먹고 자기가 치료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헛된 기대를 심어줘서 자기 옆에 붙어놓고, 또 ‘말 잘 듣는 내담자’를 만들어 자신의 추종자로 부리고...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 이런 나쁜 상담사들의 면전에 대고 “그게 아니야!”라고 일갈하는 듯 해서 속이 다 후련했다.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 적당한 치료 사례나 에피소드를 늘어놓고 이론만 설명해놓은 심리상담서에 지친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쉽게 가는 길은 없다. 부모가 싸놓은 똥이든 내가 싸놓은 똥이든 어차피 눈 앞의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 똥 냄새가 안 나도록 온갖 방부처리를 하고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한 번에 떠서 재빨리 비닐봉투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똥 냄새가 나면 바로 치울 일이다. 이 간단한 논리는 청소든 인간의 마음이든,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든 어디에나 적용된다. 진리는 늘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