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학교는 지난 해 도서관 시설을 새로 꾸미고 신간 도서도 분기마다 들여 정리할 만큼 도서관을 중시하는 분위기다. 한가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에도 책 구경을 즐겨하는데 어느 날, 두툼한 못 보던 책이 보인다. 얇은 책보다는 두꺼운 것이 좋은데 이 책,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아니...왠 의학 서적이란 말인가...(참고로 여기는 중학교 도서관이다^^;;)

외과의사라는 책에 대한 어떠한 사전 지식을 갖지 않고 단순 호기심에 이끌려 책을 대여하고는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직 날이 어둡지 않은 시각부터였다. 아...내가 책을 잘못 집었구나...

더 이상 책을 읽어서는 안 됨을 알지만,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매 장면이 바뀔 때마다...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이 되어버려서는 어느 새 중반을 넘긴다. 도통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 책 제목 외과의사는 피해자의 직업이기도 하고, 범인의 별명이기도 하다.

“범인은 전형적인 피케리스트다.” 칼을 이용해서 간접적으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사람...피케리즘은 찌르거나 베는 행위, 그러니까 날카로운 물체로 피부를 여러 번 관통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범인은 희생자의 복부를 가르고 복부내의 여성성의 장기를 적출하고는 살아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즐긴다. 그러다가 때가 되었을 즈음 목을 베어 숨을 끊는다.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캐서린 코델 박사는 3년 전 이 수법으로 죽을 뻔하였다가, 살아남는다. 바로 앤드라 캐프라라는 범인을 총으로 쏴 죽인 것. 그러나 사건은 3년 후 재현되어 여성들이 살해되기 시작한다. 범인의 목표는 캐서린 코델...그녀를 두려움과 공포로 몰기 위해 여러 여자들을 살해하고,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연장하여 캐서린 코델의 손에 의해 생명을 잇게도 만든다. 하지만 이내 병원에서 살해한다. 극도의 공포를 주기 위한 계략의 하나...

줄거리를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으니 괴롭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역시 추리에 있으니까 후의 독자들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테다. 얼마 전 마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1,2,3』을 읽고 희생자의 공포와 두려움이 한껏 감정이입이 되어 밤 외출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한 반년정도 되었으니, 그 책 이후로 추리 소설을 접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져버리다니...단언컨대, 외과의사는 모방범보다 한 수 위다. 사건의 전개라든지 주인공들의 심리묘사, 또한 전직 의사로서의 전문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묘사까지...가장 큰 점수는 범인을 추리해 나아가는 보스턴 경력반의 손에 땀이 날 듯한 긴장감 넘치는 추적에 두겠다.

아직도 가슴이 떨리는 장면은 범인이 다시 캐서린에게 접근하는 장면인데, 책 내용을 상상하며 방망이질 쳐대는 내 심장에 더 겁이 날 지경이었다. 자정이 넘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고 끝난 독서는 두려움과 공포를 남기게 되었고, 결국 이 더운 여름 날, 창문까지 잠그고 자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새벽녘에 더워 잠을 깨고 말았지만, 창문을 다시 열 수 없었다. 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나, 더위마저도 참을 수 있게 만드는 추리물을 원한다면 적극 추천하겠다.